책 축제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4년 09월 19일(목) 00:00
‘책’과 관련해 사라진 직업 중 흥미로운 게 전기수(傳奇수)다. 조선후기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낭독가로, 저잣거리에 자리잡고 앉아 맛깔스럽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다. 혼자 1인 다역을 하며 수많은 등장인물을 표현하는 재주 덕에 인기가 높았는데, 무성영화를 틀어놓고 온갖 배역을 연기하는 변사를 떠올리면 되겠다. 영상과 달리 글은 실체를 볼 수 없으니, 사람들은 전기수의 이야기에 빠져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곤 했을 터다. 얼마 전에는 ‘조선 이야기꾼 전기수’라는 뮤지컬도 공연됐다.

‘걸어다니는 서점’인 ‘책쾌’(冊?)라는 직업도 있었다. 16세기 조선시대 때 처음 등장했다고 알려진 책쾌는 서점이 없던 시절 전국 곳곳에서 책을 팔던 서적 중개상이자 책 거간꾼이다. 이들은 단순히 책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을 소개하고, 책을 직접 출판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조 때는 태조와 인조를 모독한 구절이 담긴 청나라 책 ‘명기집략’을 소장한 자와 판매자를 잡아들인 사건으로 100명의 책쾌가 죽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요즘 ‘현대판 책쾌들’을 만날 수 있는 책 축제가 인기다. ‘책의 도시’ 전주가 올해 두번째 ‘전주 책쾌’를 열었고 서울국제도서전에는 15만명의 유료 입장객이 다녀갔다. 올해 첫선을 보인 군산 북페어 역시 젊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요즘 광주의 핫한 도서관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동구 책정원에서도 얼마 전 ‘제1회 책정원도서관 책축제’가 열렸다.

‘책 읽는 ACC’ 행사를 열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오는 28~29일 ‘책에서 세상을 만나다’를 개최한다. 전국의 40개 독립서점, 출판사와 꾸리는 북마켓을 비롯해 오은 시인의 낭독회, 소설 ‘일의 슬픔과 기쁨’과 재주소년의 콜라보 공연, 플리마켓 등이 열린다.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제5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도에도 들러볼 만하다. 옥스퍼드대 교양도서 선정,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화제작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의 차인표 강연 등 풍성한 행사가 대기중이다.

전국에서 책 봇짐 지고 광주를 찾는 ‘책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인생책’을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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