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40주년 여정] 남도 문화예술 넘어 글로벌 ‘예향’ 꿈꾼다
2024년 10월 22일(화) 20:45 가가
시대 흐름 읽어낸 고품격 문화예술잡지
예술가·명사들 생생한 목소리 담아
세계를 향한 문화 키워드로 자리매김
예술가·명사들 생생한 목소리 담아
세계를 향한 문화 키워드로 자리매김
“…‘예향’은 오랜 세월 변치않고 졸졸 흐르는 석간수와 같은 마음으로 내게 남아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한 시기에 슬그머니 다가와 작은 캔디박스 하나를 슬쩍 놓고 지나갔음이니 인연의 향기가 오롯이 깊은 것이다.”(곽재구 시인 복간 ‘마중물’·2013년 4월호)
광주일보 자매지(誌) 월간 ‘예향’이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1984년 10월 ‘문화예술 종합 교양지’로 첫 발을 내딛은 ‘예향’은 다양한 읽을 거리와 볼거리로 남도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호남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잡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휴간에 들어가 휴지기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11년 2개월만인 2013년 4월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으로 새롭게 복간됐다. 독자와 함께 해온 ‘예향’ 40년 여정(旅程)을 살펴본다.
◇1980년대 ‘전국 6대 잡지’ 선정돼=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신군부는 언론기관 통·폐합 조치를 취한다. 지방지 또한 ‘1도(道) 1사(社) 원칙에 따라 12월 1일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 광주일보로 통합됐다. 앞서 같은 해 7월 31일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가 펴내던 화보 전문지 ‘전일(全日) 그라프’(1970년 12월 15일 창간)도 강제 폐간됐다.
광주일보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1984년 9월 20일 4×6배판 크기의 월간 ‘예향’ 창간호를 발행한다. ‘광주일보 40년사’는 월간 ‘예향’ 창간 배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5공(共) 전까지만 해도 전남일보와 전일방송을 운영하며 활자·방송매체에 이어 영상매체인 TV방송국까지를 설립, 호남권 대표 언론 망을 구축하려는 꿈을 부풀려 왔으나 5공 정권의 언론 통·폐합 정책으로 되레 전일방송을 빼앗기게 되자 월간 ‘예향’ 창간에 더 애착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제작 인력과 시설의 여력이 월간 ‘예향’ 창간을 앞당기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5공의 언론 통폐합으로 당시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 통합, 시설과 인력이 남아돌게 됨에 따라 새로운 매체인 월간 ‘예향’의 창간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창간 때 ‘전라도 사람들의 잡지’를 표방한 월간 ‘예향’은 창간 5년여 만인 1989년에 출판전문 잡지인 ‘출판 저널’에 의해 전국 6대 잡지에 선정될 정도로 급성장을 이뤘다. 이때 향토지가 아닌 종합지(誌)로 인정받았다. 단시일 내에 지방잡지로서는 2만 부에 육박하는 최대 판매부수를 확보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애독자, 기획·특집과 인터뷰 호응=5공 정권의 언론 탄압 속에서도 월간 ‘예향’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문화적 갈증에 목말라하는 독자들의 욕구에 부응한 기획·연재물과 명사 인터뷰 등 충실한 콘텐츠와 ‘발로 쓴’ 현장 취재기사에서 비롯됐다. 기획·연재물 또한 ‘광주 민중항쟁 특집’과‘동학혁명 현장 르포’, ‘사건으로 본 전남농민운동사’ 등 5·18과 동학농민혁명, 농민운동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한편 ‘호남인물사’ 시리즈를 통해 역사 속에 묻혀버린 근·현대 인물과 향토사 발굴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전라도 풍정’과 ‘갯나루’, ‘장터 장돌뱅이’, ‘그 노래 그 사연’ 등 전라도의 흥과 멋, 맛을 소개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윤관 대법관 등 사회명사와 문인, 예술가, 장인, 스포츠 스타, 연예인 관련 인터뷰는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광주일보 2024년 10월 8일자 3면 참조>
‘예향’은 작가들의 작품 발표 무대로도 활용됐다. 송기숙 작가의 ‘은내골 기행’과 한수산 작가의 ‘그리고, 새들은 울기 시작했다’와 같은 연재 장편소설을 비롯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푸른 산’, 이미란 작가의 ‘또 하나의 이별’, 주인석 작가의 ‘한여름밤의 꿈’ 등 단편소설들이 발표됐다.
◇11년만에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으로 복간=“…올해 창간 61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지역민들의 이러한 열망을 담아내고자 월간 예향의 제2창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6개월여 동안의 거듭된 고민과 준비 끝에 오늘 선보이는 예향은 복간이라고 하겠으나 창간의 의미가 더 새겨지는 발간입니다.”(복간호 ‘발행인의 편지’중)
‘예향’은 2013년 4월호를 펴내며 과거 ‘문화예술 종합 교양지’에서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으로 잡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며 변신을 꾀했다. 복간호에서는 ‘불붙은 아시아의 문화전쟁’을 특집으로 다루며 아시아의 문화 허브(Hub)를 놓고 경쟁을 펼치는 광주와 홍콩, 싱가포르의 문화현장을 커버 스토리로 다뤘다. 당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을 앞두고 있던 때라 특집 기사는 지역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예향’은 예술의 고장인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도약하는 과정에 동행하며 ‘로드맵 메이거’ 역할을 수행했다.
끝으로 ‘예향’은 ‘독자 여러분들의 세상과 문화와 사람에 대한 끝없는 관심을 담아내는 그릇’,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대정신과 지역의 문제와 이슈,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통로’가 되고자 한다. 로컬(Local)에 발을 딛고 ‘글로벌’(Global)에 시선을 두며 ‘예향’은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고자 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의 ‘예향’ 여정도 독자들과 소통·교류하며 나아갈 것이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광주일보 자매지(誌) 월간 ‘예향’이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1984년 10월 ‘문화예술 종합 교양지’로 첫 발을 내딛은 ‘예향’은 다양한 읽을 거리와 볼거리로 남도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호남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잡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휴간에 들어가 휴지기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11년 2개월만인 2013년 4월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으로 새롭게 복간됐다. 독자와 함께 해온 ‘예향’ 40년 여정(旅程)을 살펴본다.
광주일보 자매지(誌) ‘예향’이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남도 출신 작가들의 작품으로 제작된 ‘예향’ 표지화. |
“…5공(共) 전까지만 해도 전남일보와 전일방송을 운영하며 활자·방송매체에 이어 영상매체인 TV방송국까지를 설립, 호남권 대표 언론 망을 구축하려는 꿈을 부풀려 왔으나 5공 정권의 언론 통·폐합 정책으로 되레 전일방송을 빼앗기게 되자 월간 ‘예향’ 창간에 더 애착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제작 인력과 시설의 여력이 월간 ‘예향’ 창간을 앞당기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5공의 언론 통폐합으로 당시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 통합, 시설과 인력이 남아돌게 됨에 따라 새로운 매체인 월간 ‘예향’의 창간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예향’은 작가들의 작품 발표 무대로도 활용됐다. 송기숙 작가의 ‘은내골 기행’과 한수산 작가의 ‘그리고, 새들은 울기 시작했다’와 같은 연재 장편소설을 비롯해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푸른 산’, 이미란 작가의 ‘또 하나의 이별’, 주인석 작가의 ‘한여름밤의 꿈’ 등 단편소설들이 발표됐다.
‘예향’은 2013년 4월호를 펴내며 과거 ‘문화예술 종합 교양지’에서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으로 잡지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며 변신을 꾀했다. 복간호에서는 ‘불붙은 아시아의 문화전쟁’을 특집으로 다루며 아시아의 문화 허브(Hub)를 놓고 경쟁을 펼치는 광주와 홍콩, 싱가포르의 문화현장을 커버 스토리로 다뤘다. 당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을 앞두고 있던 때라 특집 기사는 지역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예향’은 예술의 고장인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도약하는 과정에 동행하며 ‘로드맵 메이거’ 역할을 수행했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