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대한 단상(斷想)- 이동범 수필가·교육칼럼니스트
2025년 02월 04일(화) 00:00 가가
금년 2월 3일은 절기상으로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이다. 입춘이 지나면 엄동설한의 매서운 한파를 이겨내고 기다리던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최근에는 지구의온난화로 인하여 계절의 감각이 흐려진 느낌이 들지만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도 없다. 추운 겨울이 지나야 새 생명의 봄이 오듯이 세상만사는 먼저 절망과 죽음의 밤을 지나야 희망과 생명을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대자연의 이법(理法)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봄은 희망이며 그리움이다. 인생으로 말하면 유소년기나 청소년기라고나 할까? 아무튼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고 활기를 찾아가는 계절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나무는 위로 자란 것만큼 그 뿌리도 깊이 자란다. 봄꽃은 순식간에 피는 것 같지만 참 오랫동안 준비한다.
하얀 눈 밑에서도 파란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익어간다. 꽃을 피우고 싶어서 온 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잔설의 동토 속에서도 가슴을 활짝 열고 다소곳이 고개 드는 복수초에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봄은 사랑과 평화의 계절이다. 남쪽에서는 매화가 피기 시작한다. 봄은 많은 것을 보라고 해서 봄이라고 하는데 올봄엔 새로운 꽃들을 많이 보면서 창조주에게 감사하며 자연을 마음껏 만끽했으면 좋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있다. 봄이 왔으나 봄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 또는 그 사회의 탓인 경우가 많으니 이 말은 자연이 변화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만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연은 이름처럼 제 소임을 다 하듯이 변화해야 할 때 어김없이 바뀐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을 ‘철부지’라고 이르며 분발할 것을 조언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제대로 봄을 느끼는 것일까? 사람마다 방법은 다르겠지만 답 가운데 하나는 뜻밖에도 우리말 속에 담겨있는 것 같다. 우리말 중 소리의 아름다움으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계절을 이르는 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천천히 말해보면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게다가 계절에 맞는 뜻도 품고 있다. 그렇다. 봄이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겨우내 웅크려있던 자연이 기지개를 펴며 천천히 그러나 뚜렷하게 계절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봄꽃 같은 사람들이 삶의 전령사 되어 서로서로 손잡고 힘차게 일어서는 모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 인간의 봄도 마찬가지다. 오랜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고 지낸 세월을 보낸 사람은 치유의 봄날을 기다리는 희망을 품고 인내하며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는데 허술함을 노출시키면서 세월의 늪에 살아가고 있다. 점점 희미한 영혼의 색깔로 물들고 있으며 욕망의 파도는 더욱 거센 몸살에 부서지면서 흩어지고 무기력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세월동안 다진 그 인연만은 봄꽃처럼 화사하게 웃음지으며 정갈하게 마음속에 꽁꽁 묶어두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니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고 건강만이 최고의 재산이란 것을 느낀다. 하루하루 정신 없이 살아가다 보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르고 살아온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가 종종 있다. 생각해 보면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다는 것을, 얼마나 부질없다는 것을.... 잠시 멈추면 쉼 없는 분주함 속에 놓인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게 도리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조급해지면서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잠긴다.
봄은 희망, 사랑, 평화, 생동하는 계절이다. 온 국민이 봄의 전령사 되어 희망을 속삭이는 계절에 만물이 소생하는 모습과 활기찬 계절의 소리를 들으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어수선한 정국에서 불안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국민이 새봄을 맞아 동토의 잔설에서 피어나는 복수초처럼 꿋꿋하게 희망의 꽃을 피워 가면 좋겠다.
하얀 눈 밑에서도 파란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익어간다. 꽃을 피우고 싶어서 온 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잔설의 동토 속에서도 가슴을 활짝 열고 다소곳이 고개 드는 복수초에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있다. 봄이 왔으나 봄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 또는 그 사회의 탓인 경우가 많으니 이 말은 자연이 변화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만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연은 이름처럼 제 소임을 다 하듯이 변화해야 할 때 어김없이 바뀐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을 ‘철부지’라고 이르며 분발할 것을 조언했다.
봄꽃 같은 사람들이 삶의 전령사 되어 서로서로 손잡고 힘차게 일어서는 모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 인간의 봄도 마찬가지다. 오랜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고 지낸 세월을 보낸 사람은 치유의 봄날을 기다리는 희망을 품고 인내하며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는데 허술함을 노출시키면서 세월의 늪에 살아가고 있다. 점점 희미한 영혼의 색깔로 물들고 있으며 욕망의 파도는 더욱 거센 몸살에 부서지면서 흩어지고 무기력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세월동안 다진 그 인연만은 봄꽃처럼 화사하게 웃음지으며 정갈하게 마음속에 꽁꽁 묶어두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니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고 건강만이 최고의 재산이란 것을 느낀다. 하루하루 정신 없이 살아가다 보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르고 살아온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가 종종 있다. 생각해 보면 삶이 얼마나 무의미하다는 것을, 얼마나 부질없다는 것을.... 잠시 멈추면 쉼 없는 분주함 속에 놓인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게 도리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조급해지면서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잠긴다.
봄은 희망, 사랑, 평화, 생동하는 계절이다. 온 국민이 봄의 전령사 되어 희망을 속삭이는 계절에 만물이 소생하는 모습과 활기찬 계절의 소리를 들으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어수선한 정국에서 불안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국민이 새봄을 맞아 동토의 잔설에서 피어나는 복수초처럼 꿋꿋하게 희망의 꽃을 피워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