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 활력 잃고 노동자 직장 잃어…소상공인 “눈 앞이 캄캄”
2025년 02월 16일(일) 19:15
[위기의 여수산단] <중> 지역경제 직격탄
협력업체·일용직도 ‘타격’
산단 노동자 사라진 거리
식당들은 ‘개점휴업’ 상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여수 지역 원도심인 문수동의 식당가가 최근 낮 12시 점심시간임에도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하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몇 년 전만 해도 여수 도심이 작업복을 입은 산단 노동자로 북적북적 했는데, 요즘은 발길이 뚝 끊겼네요.”

전남 동부권의 구심점인 여수의 지역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침체로 자영업자·소상공인들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모습이다.

여수지역 상인들은 “대부분이 이미 대출 이자로 허덕이고 있으며, 앞으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가게가 수두룩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 손님들로 분주해야할 낮 12시에도 식당들은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었다.

최근 찾은 여수산단 인근 주안동의 한 식당에도 무거운 정적만 흘렀다. 주인은 TV를 멍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식당 주인 이은희(여·53)씨는 “도저히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게 돼 최근 같이 일하던 직원 3명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식당의 하루 매출이 20만원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1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던 호황은 이제 옛말이 됐다.

이씨는 “원래는 산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왔었는데, 요즘에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 자체가 안 보인다”며 “작년 초부터 매출이 점점 줄어들더니 연말쯤 되니 4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제는 앞이 캄캄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인근 편의점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서혜원(여·41)씨도 “산단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특히 지난해 여름부터 매출과 손님 수가 반으로 줄었다”며 “고객이 주로 산단 노동자들인데, 일이 없으니 대부분 타지로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산단이 활력을 잃고 노동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지역경제도 휘청이고 있다.

65세가 정년인 여수산단 내 한 공장 노동자 조동희(60)씨는 정년이 조금 남았지만 올해 결국 퇴직을 결정했다. 35년간 일했던 회사를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공장이 가동을 멈춘 상태에서 하루빨리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씨는 “흑자가 나야 성과급도 나고 할 텐데 적자가 이어지니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다른 직원들은 대부분 재교육을 받고 다른 공장으로 이동하면서 여수를 떠났다”고 말했다.

최관식 민주노총 여수시지부장은 “여수산단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는 공장을 유지·보수하는 인원만 해도 플랜트 건설 노동자 7000~8000여명이 일할 수 있었다”면서 “공장이 하나 둘 가동을 멈추면서 지금은 절반 이상 줄어든 3000여명만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수주가 줄어들면서 협력업체도 타격을 입고, 일용직 노동자는 물론 기능공들조차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산단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선원동, 화장동 일대와 원도심인 신기동 흥국상가 일대도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화장동에서 10년째 비즈니스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한평성(36)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산단으로 출장을 온 노동자들 덕분에 장사가 정말 잘됐는데, 지난해부터 사람 자체가 줄고 손님이 뚝 끊겼다”며 “매출이 3분의 1 정도로 줄었고, 상권도 죽어버려 주변 숙박업 하는 사람들 모두 분위기가 안 좋다. 가장 큰 문제는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대출 금리마저 급격히 오른 상황에서 대출을 받아 투자했던 숙박업 자영업자들은 불과 1년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와 자치단체 차원의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여수지역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전국적으로 경기가 안 좋다고는 하지만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여수가 가장 심각하다”는 입장이다.

여수산단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던 흥국상가 점포는 2019년 165곳에 달했으나 2024년 105곳으로 36% 감소했다. 원도심인 중앙동 진남상가 역시 같은 기간 점포가 390곳에서 329곳으로 줄었다. 2024년 3분기 기준 원도심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24.3%로 전남 평균(12.6%)에 비해 2배가량 높다.

김미화 흥국상가 상인회장은 “산단의 어려움이 지역 전반으로 번져 지역민 모두 지갑을 닫는 분위기”라면서 “상가 대부분이 최근 2~3년만에 매출 30~40%가 감소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문을 닫은 가게가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김겸 여수시소상공인연합회장은 “코로나 때도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여수 경제가 산단이 힘들어지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특히 저금리 때 대출을 받아 투자했던 자영업자들이 고금리에 손님까지 줄어들자 빚에 허덕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인천 여수시 산업지원과장은 “여수산단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석유화학산업을 친환경·고부가 산업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정부·전남도와 함께 R&D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지역경제가 버틸 수 있도록 정부에 여수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여수=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여수=김창화 기자 ch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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