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나비와 더불어 해찰을 - 김향남 수필가
2025년 02월 17일(월) 00:00
나비 한 마리가 석류나무 가지 위에 높이 앉아 있다. 흰 바탕에 검은 띠를 두르고 양쪽 날개 끝에는 명주실처럼 긴 꼬리가 한 쌍 돋아 있다. 날개 아랫부분의 붉은 무늬가 화룡점정, 화사하고 아름답다. 초록 잎사귀 사이로 석류꽃도 한 송이 고개를 내미는 중이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희게 번져있다.

나비는 가만히 있다. 나도 잠자코 나비를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가 고요하다. 길고 가느다란 나비 꼬리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날개를 두어 번 팔랑거리더니 이윽고 훌쩍 날아오른다. 접었다 폈다 느릿느릿, 서서히 창공을 활강한다. 바람을 타는 듯, 햇살을 즐기는 듯, 전혀 서둘지 않는 기품 있고 우아한 몸짓이다. 유유히 글라이드 비행을 하다가 다시 석류나무 가지로 돌아와 앉는다.

아는 분이 자신이 기르는 나비라며 보내온 영상이다. 이름은 꼬리명주나비. 그는 꼬리명주나비를 불러오기 위해 담장 아래 일부러 쥐방울덩굴 씨앗을 심어 두었다고 한다. 쥐방울덩굴이 꼬리명주나비의 먹이식물(食草)이라는 사실을 알고, 제집 마당에 훨훨 나비 나는 꿈을 꾸어본 것이다. 나비는 종류에 따라 애벌레가 먹는 먹이식물이 다른데, 꼬리명주나비와 사향제비나비는 쥐방울덩굴과 등칡, 호랑나비는 산초나무와 황벽나무, 암끝표범나비는 제비꽃, 네발나비는 환삼덩굴이 기주식물로 알려져 있다.

쥐방울덩굴의 싹이 트고 점점 무성해진 어느 날, 그 집 마당에도 정말로 꼬리명주나비가 날아들었다. 그곳에 쥐방울덩굴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줄기며 잎사귀 뒤에 수북하게 알을 낳고서 자신들의 거처로 삼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꼬리명주나비의 개체수가 많아지면서 거미, 기생벌, 잠자리, 참새 등으로 이어지는 천적이 생겨나고, 아울러 그 집 마당은 그들의 ‘생명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쥐방울덩굴이 꼬리명주나비를 불러들이고, 꼬리명주나비의 포식자들이 차례로 나타나고, 또 상위의 포식자가 나타나면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꼬리명주나비는 우화의 과정을 거치고서도 서식지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생김새도 예쁘고 나는 모습도 예쁘고 사랑스러워 애완 나비로 기르기도 좋다. 사향제비나비나 호랑나비, 암끝표범나비는 멀리까지 이동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들을 위해서는 주변에 흡밀식물을 많이 심어 놓아야 한다. 흡밀식물은 나비가 좋아하는 꿀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종류가 다양하고 풍부하면 더 많은 나비를 불러올 수 있다.

알다시피 나비의 일생은 신비의 연속이다. 조그마한 한 점(알)에서부터 시작해 애벌레가 되고 번데기가 되고, 그리고 나비가 된다. 그 작은 점에서 어떻게 생명이 탄생하고, 어떻게 번데기가 되고, 어떻게 그처럼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채 두 달도 되지 않는 짧은 동안에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시선이 그러할 뿐 나비로서는 온전한 한 생이다. 나비의 한살이는 태어나고 살고 죽는 과정이 그 안에 다 응축되어 있거니와 모든 ‘살이’의 축약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반복해서 몇 번을 더 보았다. 땅 위에 있지 않고 지상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갯짓을 망연히 보고 또 보았다. 저 섬세하고 활연한 춤사위와 앙증맞고 천진한 비행에 쏙 빨려들어 나도 한 마리 나비가 된 듯 싶었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꾸고서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모르겠다고 했듯이 나도 잠깐 나비 꿈을 꾼 듯도 하다.

아, 그런데 왜 하필 나비 꿈이었을까. 호랑이나 사자 꿈이 아니고, 독수리나 송골매 같은 새 꿈도 아니고 왜 나비였을까. 장자의 꿈이라면 아무래도 나비 꿈이 제격인 걸까? 그럴 것이다. 나비는 인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기간을 살다 가지만 누구도 나비만큼 완벽하게 생을 구가하며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비는 모두의 꿈이다. 장자에게도 나비는 꿈의 육화와도 같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었을까.

나비 꿈을 꾸고서 장자는 홀로 기꺼웠을 것이다. 아무도 그가 조금 전에 꾼 꿈을 알지 못하지만 모른다고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북명의 물고기가 새가 되어 날아오르듯, 가장 크고 가장 황홀한 꿈을 나비로부터 꾸었을 것이다. 나풀거리는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 바람결을 느끼고 햇살을 즐기며 더 높이 더 멀리까지 내다보고 왔을 것이다.

어느 고즈넉한 오후, 나비 한 마리와 더불어 해찰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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