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마음껏 반짝일 수 있게 -장류진 에세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2025년 03월 13일(목) 00:00 가가
지난달 친구는 미뤄둔 신혼여행을 핀란드로 다녀올 거라 했다. 2월 말에 떠나 3월 초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핀란드라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였지만 그래서 더욱 부러웠다. 핀란드라면 오로라를 볼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그런 행운이 친구 부부에게 벌어지길 바랐다. 누구나 알다시피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내란 사태와 그 뉴스가 3월이 되도록 이어지는 중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입국한 친구를 만나 우연히 오로라를 보고야 만 그의 여행기를 들었다. 나는 말했다. “아, 진짜 좋았겠다. 한국 뉴스에서도 좀 멀어졌겠네.” 친구는 대답했다. “무슨, 날마다 뉴스는 챙겨 봤지, 불안해서.”
여전히 불안한 시국이긴 했지만, 우리는 우리를 불안케 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어쨌든 법대로 상식대로 일은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며칠 후에 내란 수괴 피의자는 구속 취소되어 구치소에서 당당히 나왔다. 출근하는 사람, 여행을 떠나는 사람, 숨죽이는 사람, 목청을 높이는 사람 모두 일상의 한 부분이 어긋나 있다. 아니, 산산조각 나 있다. 뉴스를 보고 통탄해하고, SNS로 울분을 표하기도 하며 집회에 나가거나 후원을 하기도 하지만 이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 사태가 완연히 해결될 때까지 그럴 것이다. 어쩌면 긴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 예상이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충혈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불면에 시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연하게도 친구에게 핀란드 이야기를 들을 무렵 책상에는 장류진 소설가의 첫 에세이집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이 놓여 있었다. 이러한 시국에 조금 호사로운 책인가 싶은 마음에 쉬이 펼치지 못했는데, 본래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던 내가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핀란드의 백야, 핀란드의 자작나무, 핀란드의 무민, 핀란드의 오로라 같은 걸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 것에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이 있지 않을까. 시커먼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 같은 지금, 핀란드의 쨍한 자연과 북유럽의 여유로움이 내게 위로를 줄 것 같았다.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물론 그렇기도 하다. 훌륭한 여행기의 감출 수 없는 특징은 읽는 이를 함께 여행지에 데려다주는 데에 있다. 나도 떠나고 싶다가 아닌, 나는 떠나 있다는 감각을 준다. 이 책의 더한 특징은 떠나는 장소가 여행지가 아닌 추억과 사람에 있다는 것 아닐까. 장류진은 교환학생이던 때 사귄 친구의 이름을 꼬박꼬박 호명하며 지난 추억과 지금의 관계와 앞으로의 희망을 말한다. 친구들이 핀란드의 풍경 앞에 놓인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 찍은 사진 대부분에서 풍경 앞에 사람이 놓이듯, 이 책이 그렇다. 우리는 그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보며 그의 여행을 상상한다. 기분 좋은 상상이 될 것이다.
물론 신혼여행에서의 친구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책을 통해 잠시 핀란드로 떠나 있음과 동시에 쏟아지는 뉴스 속보를 곁눈질했다. 여행과 독서가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친구는 물론 장류진 작가조차 조금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행 대신에 친구를 생각하기로 한다. 그게 장류진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전부인 듯도 하다. ‘서로 같은 방향, 같은 마음’인 사람들, ‘내 뒷배, 내 비빌 언덕, 내 마음의 포근한 소파’가 되는 사람들 말이다.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몇 차례 참여한 집회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가 되는 마음은 넓게 보아 연대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세상은 혐오를 부추긴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의 정치적 선택을 가늠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과 상종 못 할 것 같다. 내란을 옹호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질색이니까. 혐오하고 질색하는 게 좋은 일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다. 급한 마음과 마음이 내 안에서 뒤엉키고 폭발하기 직전에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좋은 책과 여행은 효능 좋은 안정제와 다름없다. 책을 통해 조금은 안정을 취하고, 우리가 마음껏 반짝일 수 있는 계절을 기다려야겠다. <시인>
물론 신혼여행에서의 친구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책을 통해 잠시 핀란드로 떠나 있음과 동시에 쏟아지는 뉴스 속보를 곁눈질했다. 여행과 독서가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친구는 물론 장류진 작가조차 조금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행 대신에 친구를 생각하기로 한다. 그게 장류진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전부인 듯도 하다. ‘서로 같은 방향, 같은 마음’인 사람들, ‘내 뒷배, 내 비빌 언덕, 내 마음의 포근한 소파’가 되는 사람들 말이다.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몇 차례 참여한 집회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가 되는 마음은 넓게 보아 연대하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세상은 혐오를 부추긴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의 정치적 선택을 가늠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과 상종 못 할 것 같다. 내란을 옹호하거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질색이니까. 혐오하고 질색하는 게 좋은 일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다. 급한 마음과 마음이 내 안에서 뒤엉키고 폭발하기 직전에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좋은 책과 여행은 효능 좋은 안정제와 다름없다. 책을 통해 조금은 안정을 취하고, 우리가 마음껏 반짝일 수 있는 계절을 기다려야겠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