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봄의 요정, 완도 상왕산 얼레지
2025년 03월 26일(수) 21:30 가가
봄꽃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하는 3월이 되면 나는 휴대폰 사진첩을 자주 들여다본다. 일 년 전 혹은 이 년 전 이맘때는 어떤 식물이 꽃을 피웠는지 확인하고 앞으로 피어날 꽃을 유추해 관찰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작년 이맘때의 사진첩에는 만개한 매실나무와 생강나무, 흰털괭이눈 그리고 얼레지 꽃 사진이 있다. 그러나 올해 나는 이중 단 한 식물의 꽃도 보지 못했다. 작년에 비해 올해 식물의 개화가 전반적으로 늦어지는 듯하다.
얼레지는 내가 가장 기다리는 봄꽃 중 하나다. 꽃 피는 기간이 짧아 일본에서는 ‘봄의 요정’이라 불리는 식물. 작년 완도에서 얼레지 군락을 만난 것으로 나의 봄은 시작되었다.
이맘때 완도의 상왕산을 오르다 보면 얼레지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들은 군락을 이루며 보라색 꽃만큼 얼룩덜룩한 잎의 무늬가 눈에 띈다. 반가운 마음에 상왕봉으로 오르다 만나는 얼레지를 사진 찍다 보면 어느새 사진첩은 보라색 꽃으로 가득찬다.
얼레지는 백합과 얼레지속의 한 종으로, 얼레지속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25종이 분포한다. 얼레지는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유일한 얼레지속 식물로 우리나라에 외에도 일본, 러시아 극동,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평야부터 2000m의 산까지 다양한 고도에서 자라며 활엽수림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침엽수림에서도 자란다. 얼레지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은 잎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어 붙여졌다.
얼레지에게는 유독 다양한 이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재무릇이라고도 부르며 서양에서는 ‘Trout lily(트라우트 나리)’ 혹은 ‘Dog’s tooth violet(개 이빨 제비꽃)’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개 이빨 제비꽃’이란 영명은 얼레지의 비늘줄기 때문에 붙여졌는데 이들 땅속의 비늘줄기는 마치 개의 송곳니와 같이 기다랗다. 그리고 꽃이 보라색일 뿐 영명과 달리 제비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얼레지는 이른 봄이 되면 비늘줄기에서 줄기가 나와 꽃을 피운다. 옅은 보라색 꽃잎은 6장이며 바깥쪽으로 뒤집혀 개화한다. 꽃이 진 후 달리는 열매는 삭과이며 3개의 능선이 있다. 열매가 익으면 능선을 따라 터지면서 안에 있는 씨앗이 나오는데 씨앗에는 개미가 좋아하는 엘라이오솜이라는 물질이 있어, 개미가 이 물질을 먹기 위해 씨앗을 옮기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이맘때 상왕산을 오르다 보면 얼레지를 자주 마주쳐 마치 이들이 민들레나 제비꽃과 같이 흔한 식물이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비늘줄기로부터 꽃이 피기까지 7~8년이 걸린다. 8년을 기다려 두 장의 잎을 내고 개화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눈앞의 얼레지 꽃 한 송이가 소중해진다.
사실 얼레지는 일본에서 더욱 귀한 식물로 여겨진다. 도시화로 인한 자생지 훼손과 식물 애호가들의 무분별한 채집으로 인해 멸종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한때 얼레지는 도쿄 근교 잡목림에 군생할 정도로 흔했지만 개발과 남획이 이루어지면서 개체수가 급감해 자생지 대부분이 보호 대상이 되었다. 일본의 얼레지 자생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펜스로 막아놓은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일본 사람들이 얼레지를 특별하게 여겨온 것은 화훼식물로서의 관상 가치뿐만 아니라 식용 식물로서 효용성 때문이었다. 예로부터 얼레지는 식재료로 쓰여 왔다. 일본에서는 꽃이 피기 전 이른 시기에 딴 어린잎을 기름과 볶아내거나 간장 조림으로 해먹었고 전분이 많은 비늘줄기는 ‘카타쿠리코’라는 이름의 가루로 만들어 먹었다. ‘카타쿠리’는 얼레지의 일본명이다. 이 전분가루는 소화가 잘돼 약으로도 쓰여 왔다. 그러나 얼레지를 보기 어려워지면서 얼레지 전분은 감자 전분으로 대부분 대체되었다. 여전히 일본의 마트에서는 카타쿠리코라는 이름의 국수와 전분가루를 판매하는데 이것은 얼레지 없는 얼레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 비늘줄기에서 전분을 추출해 국수 같은 요리를 해먹었다.
얼굴을 아래로 향하는 얼레지 꽃은 햇빛을 받아야 개화한다. 그래서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꽃 핀 모습을 보기 어렵다. 물론 흐려도 온도가 높으면 개화하기도 한다. 빛과 온도에 매우 예민한 식물이다. 만일 다가오는 봄 당신이 만개한 얼레지를 본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여러 환경 조건이 맞아떨어져 마주한 행운인 셈이다. <식물 세밀화가>
이맘때 완도의 상왕산을 오르다 보면 얼레지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들은 군락을 이루며 보라색 꽃만큼 얼룩덜룩한 잎의 무늬가 눈에 띈다. 반가운 마음에 상왕봉으로 오르다 만나는 얼레지를 사진 찍다 보면 어느새 사진첩은 보라색 꽃으로 가득찬다.
얼레지는 백합과 얼레지속의 한 종으로, 얼레지속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25종이 분포한다. 얼레지는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유일한 얼레지속 식물로 우리나라에 외에도 일본, 러시아 극동,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평야부터 2000m의 산까지 다양한 고도에서 자라며 활엽수림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침엽수림에서도 자란다. 얼레지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은 잎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어 붙여졌다.
이맘때 상왕산을 오르다 보면 얼레지를 자주 마주쳐 마치 이들이 민들레나 제비꽃과 같이 흔한 식물이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비늘줄기로부터 꽃이 피기까지 7~8년이 걸린다. 8년을 기다려 두 장의 잎을 내고 개화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눈앞의 얼레지 꽃 한 송이가 소중해진다.
사실 얼레지는 일본에서 더욱 귀한 식물로 여겨진다. 도시화로 인한 자생지 훼손과 식물 애호가들의 무분별한 채집으로 인해 멸종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한때 얼레지는 도쿄 근교 잡목림에 군생할 정도로 흔했지만 개발과 남획이 이루어지면서 개체수가 급감해 자생지 대부분이 보호 대상이 되었다. 일본의 얼레지 자생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펜스로 막아놓은 경우가 많다.
이처럼 일본 사람들이 얼레지를 특별하게 여겨온 것은 화훼식물로서의 관상 가치뿐만 아니라 식용 식물로서 효용성 때문이었다. 예로부터 얼레지는 식재료로 쓰여 왔다. 일본에서는 꽃이 피기 전 이른 시기에 딴 어린잎을 기름과 볶아내거나 간장 조림으로 해먹었고 전분이 많은 비늘줄기는 ‘카타쿠리코’라는 이름의 가루로 만들어 먹었다. ‘카타쿠리’는 얼레지의 일본명이다. 이 전분가루는 소화가 잘돼 약으로도 쓰여 왔다. 그러나 얼레지를 보기 어려워지면서 얼레지 전분은 감자 전분으로 대부분 대체되었다. 여전히 일본의 마트에서는 카타쿠리코라는 이름의 국수와 전분가루를 판매하는데 이것은 얼레지 없는 얼레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 비늘줄기에서 전분을 추출해 국수 같은 요리를 해먹었다.
얼굴을 아래로 향하는 얼레지 꽃은 햇빛을 받아야 개화한다. 그래서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꽃 핀 모습을 보기 어렵다. 물론 흐려도 온도가 높으면 개화하기도 한다. 빛과 온도에 매우 예민한 식물이다. 만일 다가오는 봄 당신이 만개한 얼레지를 본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여러 환경 조건이 맞아떨어져 마주한 행운인 셈이다. <식물 세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