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서울 밖으로 - 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5년 03월 31일(월) 00:00
얼마 전, 한 지인이 신문 기사의 사진을 보내왔다. 미디어아트 작가 김아영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를 보러 갔다가 광주에서 본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김아영 작가의 작업이었다”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전폭적인 지원을 언급하고는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그런 수준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이 부럽다”고 덧붙였다.

예술을 대하는 인식 속에 아직도 ‘서울 중심’이라는 무의식이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었다. 작가와 작품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실현된 장소가 ‘지방’이라는 이유로 놀라워하는 태도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 짧은 대화는 한 작가의 성취를 넘어 우리 사회의 균형 있는 문화 발전과 지역에 기반한 문화예술기관의 역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지방’이라는 말 하나만이 아니다.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이는 의미가 문제다. 특히 이 작품은 광주에 위치한 국가 문화예술기관의 제작 지원을 통해 실현된 것으로, 이는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 의미 있는 창작 실험을 가능하게 한 사례로서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도 ‘지방’이라는 말은 여전히 ‘중심에서 떨어진 곳’, ‘상대적으로 부족한 위치’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대’, ‘지방 출신’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에서 ‘지방’이라는 말은 종종 열위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사용되고 있다. 특히 언론이나 정책 담론에서 ‘지방 소멸’, ‘지방 격차’, ‘지방 이전’과 같은 표현이 반복될수록 ‘지방’은 어느새 중립적인 지리적 개념을 넘어 문제를 상징하는 단어처럼 인식되기 쉽다. 그래서일까. 지역에서 일어난 성취마저도 ‘중심이 아닌 곳에서의 예외적 성과’로 여겨지는 듯하다.

지인이 보내온 기사 아래 잘려 찍힌 또 다른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국립예술단이 지방으로 옮긴다고? 흉흉한 소문, 실체 알아보니’ 이 문장만 봐도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이전이 마치 불안한 사건처럼 다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프레임 자체가 문화의 중앙집중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물론 기사 속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는 본원 이전이 아닌 분원 설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질문은 남는다. 왜 본원은 서울에 있어야 하고 지역은 분원이어야만 하는가. 국립예술단체가 특정 도시에 있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오히려 ‘국립’이라는 명칭이야말로 전국민이 고르게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함을 뜻한다.

국립기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자산이다. 따라서 서울에만 집중되어서는 안 되며 지역 분산은 오히려 그 공공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우리는 유럽 도시를 여행하며 지방의 예술기관과 공연에 감탄하지만 정작 서울 밖 국립예술단체의 존재는 낯설게 느낀다. 젊은 예술가들이 창작과 기회를 찾아 모두 서울로 향하는 현실을 방치한다면 지역은 점점 창작의 기반을 잃게 된다. 결국 이는 사회 전체의 문화적 다양성과 창조력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예술은 도시를 따라 자라지 않는다. 사람을 따라 자란다. 창작과 향유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예술은 뿌리내릴 수 있다. 문화예술 자원을 지역으로 확산하는 일은 단순한 분산이 아니라 창작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더 많은 시민에게 예술의 감동을 전달하는 행위다.

문화예술처럼 사람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는 것도 없다. 이 힘은 특정 도시에 머무를 때보다 전국으로 확산될 때 훨씬 더 강력해진다. 1982년 이후 국가균형발전정책이 추진되어 왔지만 오늘날 서울과 지역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관 이전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예술 역량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문화의 흐름을 전국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이다.

창작과 향유의 기회는 모든 지역에 고르게 주어져야 한다. 문화예술은 서울만의 것이 아니다. 지역은 더 이상 중심을 보완하는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각 지역이 문화의 주체로 성장하고 그 안에서 시민과 예술이 함께 숨 쉬는 시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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