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를 졸라매고 모은 돈과 대출금으로 가게를 열어도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중병에 걸리거나 가장이 실직을 하면, 보통의 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기 쉽다.

이 같이 생긴 빚은 노력해도 쉽사리 갚아지지 않아 오랜 기간 시달리고, 심지어 채무자가 사망해 어린 자녀나 늙은 노부모가 이를 상속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대부분 상속한정 승인을 하거나 상속포기를 하지만 말이다.

재판 중 이런 피고들을 만나게 되면, 피고의 그간의 삶과 아이들이 앞으로 맞닥뜨릴 인생의 파도, 자식을 먼저 보낸 노부모의 고단한 여생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마음이 아프다.

금융기관을 비롯한 돈을 빌려 준 측의 처지도 힘들고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상대방을 믿고 어렵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은 겪어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공사나 일을 시켜 놓고 공사대금이나 월급을 주지 않다가 체불에 지친 하도급업자나 직원이 뒤늦게 소송을 하면 단기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같은 채권의 경우 대개 소멸시효가 3년이다.

오히려 채권자가 생활고에 빠지는 경우도 흔히 발생하고, 금융기관의 부실화는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단순히 채무자를 동정할 것도 아니다.

수단 남부에서 의료봉사를 하다가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님이 쓰신 ‘묵상’이라는 노래에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느냐’라고 신에게 묻는 구절이 있다.

감히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범인(凡人)인 나도 각자 사연을 가진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재판을 하고 나면 ‘인생은 왜 이리 힘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마 신은, 이런 내게 더 열심히 재판하고 당사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법률이 헌법과 공동체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인지 고민하라고 말씀하실 것 같았다. 사실 그 외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오늘도 법정에 나왔다가 뒤돌아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기도를 한다. 부모가 가난해도 그의 자녀는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돈은 없지만 가정에 화목이 깃들기를, 몸이 아파도 치료비가 없어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이 없기를, 늙고 병들었을 때 최소한의 품위를 갖춘 상태에서 눈을 감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런 기도를 멈출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정한근 광주지방법원 제20민사단독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