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4명의 자녀를 두고 우울증을 앓는 아내를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사체를 은닉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피고인에 대한 국민참여 재판에 국선변호인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살인·강도강간·뇌물 등 중대범죄 사건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원할 경우 국민참여재판 절차에 따른 심리가 진행된다.

보통 재판 당일 오전은 배심원 선정 절차가 진행되고 오후에는 증거조사 절차 및 피고인신문·검찰의 구형·변호인 최후변론·피고인 최후진술 및 판결 등의 절차가 진행된다.

이 제도의 큰 특징은 추첨을 통해 8명 정도의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직접 재판 절차에 참여한다는 점인데, 보통 재판 당일 오전에 첫 절차로 한 시간여 동안 배심원 선정절차가 진행되게 된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후보로 70∼80명 정도를 뽑아 출석 통지한 뒤 재판 당일 출석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법률적 소양·편견 여부 등에 관한 문답 및 기피절차를 진행, 최종적으로 예비배심원 1명을 포함한 8명의 배심원을 확정하는 것이다.

배심원들은 유·무죄 평결과 유죄일 경우 구체적인 형량 결정까지 하게 되고 그 결정이 재판부에는 권고적 효력이 있다지만 실제로는 특히 형량과 관련해서는 거의 배심원의 의견이 그대로 존중된다고 한다.

변호인으로서는 결국 피고인에 보다 유리한 정상 참작을 해 줄 배심원을 구성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배심원들도 유·무죄 판단은 물론 유죄일 경우 실형선고 혹은 집행유예로 석방할 것인지 여부까지 결정을 하게 되므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법정은 팽팽한 긴장감이 지배한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이 없는 일반 배심원들이 유·무죄 판단 및 형량 결정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일부 우려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배심원들의 평결에 재판부가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강제성을 띠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권고적 효력에 그치도록 돼 있다. 사실상 안전판을 마련해 놓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오히려 참여재판 대상 범죄를 확대하는 등으로 아직은 위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최근 대부분의 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와 해당 재판부의 결론 간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필자가 참여한 사건의 경우 7명의 배심원 중 6명이 집행유예 의견을 제시했고 법원이 그 의견을 존중해 피고인은 결국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받고 당일 석방됐다.

일반 재판 절차에서 직업법관이 폭행치사에 사체유기까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해 석방했다면 형량에 대해 의문을 가질 여지도 많았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양형토의 끝에 내린 결론이 집행유예였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석방한 것인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판결에 대해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판결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대목이다.

그동안 국가는 일반 국민을 단순한 법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사법 제도를 운용해 왔다. 하지만 최근 민간 조정 제도의 활성화, 배심원 제도의 도입 등으로 이제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 사법 불신이 해소되고 법원의 판단에 승복하며 국민 각자의 책임 의식을 고취시키는 문화가 정착되는 데에도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혹여 독자 여러분이 어느 날 법원으로부터 배심원 후보자로 선정됐으니 법원에 출석해 달라는 취지의 우편물을 받는다면 일일 법관으로서 적극 참여해 보기를 간곡히 권유하고 싶다. 그 자체 법치주의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는 점은 덤으로 생기는 이득이 될 것이다.

〈임태호 광주지방변호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