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이는 상대방과 처지를 바꿔 생각하라는 의미다. 이 말은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갖추려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필자가 다루는 고소사건의 당사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닫은 채 대부분 자신의 말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같이 당사자들끼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사건 해결 과정에서 생긴 오해와 감정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사가 중재자로 나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어느 정도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당사자들이 오해를 풀고 합의점을 찾아 고소를 취하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처음부터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문제에 접근했다면 수사기관까지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과 느낌은 가정·종중·아파트·종교시설과 같은 공동체 내에서의 분쟁이 자체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이 같은 모습이 갈수록 증가하는 현실을 볼 때 절실하게 와 닿는다.

필자는 초임시절 오로지 피고소인의 처벌만을 요구하며 극한 행동을 보이던 고소인을 본 적이 있다. 고소인은 목욕탕 운영 문제로 피고소인과 수년간 고소·고발을 반복하면서 생업도 포기하고 송사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검사실에도 여러 사건이 있었는데, 담당 검사의 얘기를 들어 보니 서로 싸우기만 해 조사조차 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필자도 어렵사리 조사를 마치고 고소인과 면담을 했는데 고소인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증거관계상 기소할 수 없는 사건이었고 이점을 고소인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고소인은 “알겠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복도에서 고성이 들리고 무엇인가 바닥에 내던져지는 소리가 나더니 고소인이 다시 필자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고소인은 필자에게 “기소하지 않으면 여기서 송장을 보도록 해 주겠다”고 소리치며 수면제와 진정제를 삼켜 버렸다. 빠른 조치 덕분에 고소인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고소인은 다음날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고소인은 필자에게 “정말 기소할 수 없느냐”고 물은 뒤 필자는 증거가 없는 이상 기소하기 힘들다고 판단되는데 필자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으니 불복 절차를 밟아 보라고 했다.

고소인은 “정말 안 되는 거죠?”라고 말한 뒤 필자의 사무실을 나갔다. 필자는 고소인이 전날 한 행동도 있고 하니 이번에는 순순히 귀가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고소인은 곧바로 검사장실 앞에서 전날 필자의 사무실에서 했던 행동을 한 뒤 구급차에 실려갔다.

필자는 현재까지 당시 고소인의 말과 행동이 기억에 생생하다. 고소인의 행동이 이해는 가지만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갈등 초기에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거나 누군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중재 역할을 했다면 생업도 포기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극한 행동에까지 이르는 불상사는 없지 않았을까 한다.

우리나라 한해 평균 고소사건 접수건수는 이웃나라 일본의 60배(인구비례 감안 155배)에 달한다. 이중 60% 이상이 불기소 처분이다. 이는 수사력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

고소는 분쟁 당사자 간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 보는 우리 지역 사회의 성숙한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호석 광주지검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