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모 방송국 스포츠 채널 아나운서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자살 이유가 궁금했지만 누구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내가 그 아나운서의 자살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에 직업상 몸에 배인 대화 기법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필자가 “누가 그래? 어디서 확인한 거야?”라고 말하자, 아내는 화를 내며 나름 근거가 있다면서 인터넷에서 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내는 “그 아나운서의 친한 친구를 이모로 둔 사람이 친구인데, 그 친구한테 들었다는 사람이 올린 글이다”라는 등 여러 이야기를 했다.

남들은 다 안다는데 나로서는 추측성 기사를 접한 기억밖에는 없는지라 말다툼으로 대화를 끝내고 말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말과 유사한 법률용어인 ‘공지의 사실’(公知의 事實)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상 명백한 사실이나 자연계의 현저한 사실과 같이 보통의 지식,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심하지 않고 인정하는 사실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범죄사실을 구성하기 위한 사실관계의 확정이 필요하고 이 사실관계에 대하여는 증거에 의해 증명이 필요한 데, 공지의 사실의 경우 증명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고 해서 증명이 필요 없는 공지의 사실은 아니다. 더구나 공지의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반증이 성공한 때에는 더 이상 공지의 사실이 아니다.

한 예로 ‘바닷물은 짜다’는 식의 자연계의 변화 불가능한 사실은 공지의 사실이다. 검사 생활을 하다 보면 입증이라는 문제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과 관련해 난감한 상황에 봉착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성매매를 했다는 구체적인 물증, 다량의 피임기구가 발견됐다든지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업주가 부인할 경우 이와 같은 물증이 없다면 그 업주를 성매매업소를 운영했다는 혐의로 처벌하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분명 그곳이 성매매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100% 확신하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도 처벌을 하지 못한다니 속내를 모르는 일반인의 경우 이해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반인에게는 ‘공지의 사실’이지만 검사실이나 법정 안에서는 ‘공지의 사실’이 아니라 엄격한 증명이 필요한 사실이다.

피조사자가 검사실에서 업계에서는 다 아는 당연한 사실인데도 “왜 검사님만 모르시냐”며 하소연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 수사를 하는 검사실에서는 업계의 ‘공지의 사실’도 증명이 필요하다.

결국 세상사람들 중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은 ‘공지의 사실’이 아니라 증명이 필요한 사실이라는 말이다. 특히 누군가를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더욱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

인터넷에서는 누군가 그럴 듯하게 만들어 낸 추측성 글을 퍼 나르고 또 다른 누군가 가 그 글에 마치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처럼 댓글을 다는 과정에서 어느새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로 바뀌어 ‘마녀사냥식’ 단죄가 이루어진다.

당사자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믿어주지 않고 인터넷상 이루어지는 ‘루머 파헤치기’를 통해 퍼진 사실을 믿어버린다.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이 진실인지를 확인할 수 없음에도 그로 인해 누군가로 하여금 자살에 이르게 하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은 그저 루머일 뿐이다. 더 이상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누군가를 단죄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검사인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 마음속에 ‘공지의 사실’을 만들어 내지 않고 철저한 입증을 해야 할 것이다.

〈진철민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