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흉악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범이라고 하더라도 변호인의 변호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제 사건에서 살인죄와 같은 중범죄를 접하게 되는 경우 변호인으로서 선뜻 사건을 수임해 변론하고픈 마음의 정도가 일반사건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살인죄를 저지른 피고인의 항소심 사건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다. 변호사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변호중 하나로 기억된다. 피고인과의 접견과 변론과정에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중범죄자의 삶과 사건 이후의 사법시스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부인과 바람을 피운 남자를 살해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50대 초반의 남자였다. 피고인에 대한 범죄사실은 사건 발생 당시 공중파나 지역일간지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터라 변호인으로서는 사건기록보다 먼저 언론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필자는 1심 판결선고 이후 피고인의 가족이 변호인을 찾아와 항소심 재판의 수임을 의뢰하고자 하였을 때 범행수법이 다소 잔혹하고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과 피고인이 1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8년의 형에서 변호인으로서 감형을 받아내는 것도 쉽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사건 선임을 망설였다.

하지만 피고인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열심히 변론에 임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자신이 살아 온 과정과 이 사건에 이른 경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피고인의 얼굴에서 진심 어린 사죄의 눈빛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기록을 읽으면서 피고인과의 접견과정에서 피고인이 보여줬던 사과의 진정성과 살인에 이른 경위의 솔직함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항소심 재판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중범죄행위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피고인이 이 사건에 이르게 된 경위가 최초 내연관계를 안 이후에도 피해자에게 관계를 청산하라는 말을 하였을 뿐 과거의 관계에 대하여 문제 삼지 않았다.

또 이 사건 이전까지 전과 없이 성실하게 살아 온 점, 이 사건 범행 후 3시간 만에 수사기관에 찾아가 자수한 점 등 이 사건 양형조건이 되는 제반정상관계에 비춰 제1심의 징역 8년의 형은 피고인에게 너무 무겁고 가혹하다는 취지의 변론을 하였다.

항소심에서 피고인은 1심보다 3년이 감경된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검찰과 피고인 모두 상고를 포기하여 사건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비록 필자가 변호인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이라는 소중한 가치는 인간이 그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빼앗을 수 없는 가치라는 점에서 살인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중형 선고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살인의 동기와 경위, 살인 이후의 피고인의 태도에 따른 양형의 합리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범죄인 살인사건의 경우 오히려 초범인 우발적인 격정범이 많다는 통계수치를 본 기억이 있다.

그만큼 범죄전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순간적인 감정통제를 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는 살인의 결과에 이르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것이다.

필자는 역설적이게도 변호인 스스로 선입견에 이끌려 사건을 수임하는 것을 가장 망설인 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오히려 죄지은 사람으로서 순수하게 반성하는 눈빛과 태도를 경험했다.

어느덧 피고인의 석방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 되었다. 피고인이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김정호 광주지방변호사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