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칠순을 넘긴 어르신께서 검찰청 민원실에 출퇴근을 시작했다. 검찰청에 근무하기 위해 출퇴근을 시작하신 것은 아니다. 일종의 ‘시위’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 경위는 이러하다. 어느 날 그 어르신의 손자를 친 엄마가 데려간 후 돌려보내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엄마는 배우자와 이혼하면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자녀양육권을 포기하는 대신 면접교섭권을 갖게 됐다.

그에 따라 매월 정기적으로 그녀의 아들(어르신의 손자)과 만남의 자리를 갖던 중 모정(母情)이 지나쳐 아예 아들을 양육할 의도로 데려가 버린 것이다.

이러한 갑작스런 상황에 그 아이의 아빠도, 이 손자를 끔찍이 귀여워했던 어르신도 많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그 어르신은 고소장을 손에 들고 검찰청을 방문했다. 우리나라 형법상 양육권이 없는 사람은 설령 친 엄마라고 하더라도 미성년자 약취 또는 유인죄로 처벌될 수 있다.

이 어르신의 고소장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이 어르신이 “왜 내 손자를 엄마로부터 빼앗아 돌려주지 않느냐”며 항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 어르신께 개인 간에 발생한 분쟁은 민사재판 등을 통해 해결돼야 하고 검찰청에서는 형사상 범죄가 되는 행위에 대한 수사나 처벌 등에 대한 업무만 처리하기 때문에 ‘유아인도청구’의 문제에 대해 검사가 직접 관여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의 입장은 완고했다. 검사는 죄 지은 사람을 ‘감옥소’에 보낼 수 있는데, 어린 아이 하나를 돌려 줄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 어르신은 “할 생각이 없어서 하지 않는 것이니, 해줄 때까지 매일 검찰청에 오겠다”고 했다. 필자는 “연세도 높으신데, 이렇게 매일 오시다가 건강에 탈이라도 나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씀드렸는데, 그에 대한 답변도 “내가 지금도 마라톤 완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여. 걱정 말드라고”로 돌아왔다.

결국, 이 문제는 형사재판과정에서 그 엄마가 자진하여 아이를 어르신께 돌려보냄으로써 사실상 끝났다. 그러나 이 어르신의 생각 속에 있던 ‘검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단순히 법률체계를 모르시는 분이 막무가내로 시위를 했다고 쉽게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내가 지금 검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머릿속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각종 죄명을 적은 고소장을 들고 검찰청을 방문하고 있다. 이분들에게 고소한 이유를 물어보면, 대다수는 “피해를 조금이라도 구제받기 위해 고소했다”고 답변한다.

상당수의 고소장은 법률요건상 형사처벌이 어려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분들의 바람을 법률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냥 외면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에 앞서 피해자의 마음, 그 애타는 심정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가짐, 이것이야말로 칠순의 어르신께서 젊은 검사에게 하시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을까.

오늘도 산적한 사건기록을 앞에 두고 검사의 소임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이동원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