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축은행의 부실 운영과 영업정지, 그 감독기관의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이 연일 화제다. 감독기관 간부가 피감기관으로부터 승용차를 받아 챙기거나 보험설계사인 부인이 보험계약 특혜를 받은 의혹, 퇴임 후에는 피감기관의 감사로 임명되는 소위 낙하산 감사 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의 권한 분장 방안 등 제도개선책도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진상조사단에 의하면 이번 7개 저축은행에서 영업정지 전날 마감시간 이후에 인출된 예금만 1077억원, 3588건에 달한다. 이 같은 뱅크런 중 상당수는 대주주 및 임직원이 명의신탁해 스스로 관리했거나 영업정지 전 대주주나 임직원이 영업정지 사실을 흘린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이 같은 ‘발 빠른’ 뱅크런에 동참하지 못한 예금자들은 연일 연좌 농성 중이고 금융감독원 및 정치권은 전액 회수를 다짐하고 있다. 전액 회수의 공격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바로 채권자취소권이다.

확립된 대법원 판례는 피보전채권의 존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사해행위 이전에 발생된 것임을 요한다. 하지만 그 법률행위 당시에 이미 채권 성립의 기초가 되는 법률관계가 발생돼 있고 가까운 장래에 그 법률관계에 기하여 채권이 성립되리라는 점에 관한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

또 실제 가까운 장래에 그 개연성이 현실화돼 채권이 성립한 경우에는 그 채권도 채권자취소권의 피보전채권이 된다는 입장이다.

채무자의 악의는 원고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하지만 채무자의 무자력이 입증되면 채무자의 악의는 사실상 추정되며 채무자의 악의가 입증되면 수익자 및 전득자의 악의도 법률상 추정되므로 원고의 행사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수익자 또는 전득자 스스로 선의를 입증해야 한다.

예컨대 채무자의 무자력→채무자의 악의→수익자 또는 전득자의 악의가 순차로 추정되고 만다. 평소 필자는 위와 같은 고도의 개연성에 의한 피보전채권의 소급, 2단계 또는 3단계 악의 추정의 실무례에서 그동안 사해행위취소송에서의 패소판결의 변명거리를 찾아 왔다.

법률행위 시점으로 치면 거의 1년이 늦은 변제행위(구상권 취득)를 근거로 선행 법률행위를 무력화시키는 신보의 주장, 위 주장을 위 논리로 수용해 주는 법원의 입장에서,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껴 왔다.

온갖 재무정보를 장악하고서 방만하거나 안일한 재무분석으로 대출 및 보증서를 남발한 뒤 뒤늦게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금융기관의 처사를 억울하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위 저축은행 사태에 대하여 채권자취소권 무용론이 제기되어 또 다른 의미의 무력감을 심어 준다.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구하는 것은 그의 당연한 권리행사다. 채무자도 채무의 본지에 따라 채무를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므로 채무자가 채무초과 상태에서 특정채권자에게 채무의 본지에 따른 변제를 함으로써 다른 채권자의 공동담보가 감소하는 결과가 되는 경우에도 그것이 특히 일부의 채권자와 통모해 다른 채권자를 해할 의사를 가지고 변제를 한 경우가 아닌 한 원칙적으로 사해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확립된 판례가 위 무용론의 근거로 보인다.

결국, 핵심은 통모 변제 여부에 있는 것인데, 온갖 금융정보를 장악한 후 채권자취소권을 선제로 제기하고 십분 활용해 온 금융기관에서 이번 사태에 관하여는 지나치게 신중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필자처럼 경솔하고 무능한 변호사 입장에서는, 예보(예보는 예금주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저축은행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가 속히 위 3588건의 ‘발 빠른’ 변제거래에 대하여 통모 변제를 대비해 보전처분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훈 광주지방변호사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