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그 사건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한명 한명의 얼굴이 똑같지 않듯 사건기록에서 나타난 사람들의 인생살이 또한 천차만별이다.

사법연수원에서 변호사 실무수습을 받던 2001년 봄, 필자는 당시 구속 재판 중인 피고인의 항소심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됐다. 기록상 주된 죄명은 절도였지만 그 내용은 다소 특이했다.

그 피고인은 여장남성이었다. 자신이 일하던 미용실 주인의 돈 수백만 원을 훔친 뒤 길에서 주운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다녔다는 것이다. 사건 기록을 살펴보니, 미용실 주인도 여장남자였는데, 미용실 주인이 일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완전한 여성이 된 것을 보고 피고인 자신도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참 특이한 사건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구치소에 있는 피고인을 접견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차에 구치소에서 그 피고인이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와 격리조치 중이라는 연락이 왔다.

변호인 접견실에서 피고인을 기다리고 있던 중 중병 환자임을 나타내는 줄무늬 수의를 입고 어깨까지 오는 긴 파마 머리를 한 피고인이 다가왔다. 키도 그리 크지 않았고 몸매도 호리호리할 뿐만 아니라 머리도 길고 해서 언뜻 보면 여성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남자임을 알 수 있는 외모였다.

피고인과 악수를 하고 국선변호인으로 찾아 왔음을 말해 준 다음 피고인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피고인이 말하는 대로 전해 들었다. 그는 중학교 시절 신체적 이상 징후를 느껴 바로 가출을 했고 그때부터 40대 초반인 당시까지 한 번도 정상적인 삶을 누려본 적이 없었다.

정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여장을 한 채 식당이나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남자라는 게 들키면 매를 맞거나 월급도 받지 못한 채 그날로 바로 쫓겨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생활하게 되었고 그때 미용실 주인을 만나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게 되었는데 그런 미용실 주인을 배신하고 돈을 훔쳤다가 그마저도 브로커들에게 속아 일본에는 가보지도 못하였다.

에이즈에 걸린 것도 최근에 구치소에서 알게 되었지만 그냥 구치소에서 주는 약을 복용할 뿐 연락할 가족도 없고 해서 뾰족한 대책도 없다고 하였다.

피고인의 딱한 처지를 듣고 나니 뭔가 알 수 없는 막막함과 함께 비록 국선변호인이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고, 다행인지 미용실 주인도 비록 훔쳐간 돈을 돌려받지는 못했지만 피고인도 브로커들에게 속았으니 선처를 해 달라고 해 2심에서는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면서 재판장은 석방되더라도 보건소 등을 통해 꼭 치료를 잘 받으라고 당부를 하였고 피고인도 “알겠습니다”라고 하고선 재판장과 필자에게 인사를 하고 교도관들과 함께 퇴정하였는데 그 이후로는 피고인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전혀 알아볼 수는 없었다.

접견실에서 피고인의 말을 들어보기 전에는 그렇게 여장남자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는지 미처 몰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함부로 예단하지는 않았는지, 너무 쉽게 다른 사람들을 화젯거리로 올리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법조인이라면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여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는 교훈을 내 스스로 얻은 셈이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검사로 근무한 지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때 구치소 접견실에서 무슨 말을 하다가 살짝 웃게 되자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리던 피고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그 피고인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잘 계시는가요?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김민형 광주지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