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법대로 판결해 주세요.”, “대법원까지,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이는 민사사건 법정에서 일부 당사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판결을 선고받고 또 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까지 상소해 판단을 받는 것이 당사자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지난 7월 중순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에서는 민사배심조정재판(이하 조정재판)을 실시했다. 조정재판에서는 민사사건에 관해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조정절차에 참여해 당사자들로부터 사안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권고적 조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를 유도, 분쟁을 해결한다.

조정재판은 2006년 전국 최초로 이곳 장흥지원에서 시험 실시한 이래 매년 두 차례가량 실시하는데, 이번이 10번째이다.

이번 사건은 수도권에 살고 있어 노모를 모시지 못하던 장남(원고)과 시골에서 홀로된 채 노모를 모시는 막내며느리(피고) 사이에 시골집 소유권을 놓고 생긴 분쟁이었는데, 자녀 중 누가 노모를 부양할 것인가라는 문제까지 얽혀 있는 사건이었다.

가족 사이의 분쟁으로 일도양단적인 판결로써 판단하는 것보다는 조정으로 해결하기에 적합한 사건이었다. 장흥에 거주하는 100명의 배심원단을 성별·연령·직업 등에 따라 9개 그룹으로 분류하고 각 그룹에서 서너 명씩 총 30명의 배심원 후보를 확정해 조정기일에 소환했다.

조정기일에서는 이들 중 원·피고와 친인척관계가 있는 사람과 원고, 피고가 배제신청을 한 사람들을 제외한 30대부터 70대까지 여자 5명, 남자 7명으로 된 12명의 배심원단이 구성됐다.

배심원들은 재판장과 당사자들로부터 사건의 개요와 주장, 법률적인 문제들을 모두들은 뒤 추가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항에 대하여 원고와 피고에게 질문하도록 했다.

“그 집은 원래 누구의 소유였느냐”, “왜 시골로 내려와 노모를 모시게 되었느냐?”라는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12명의 배심원은 평의를 통해 조정안을 제시했다. 첫째, 문제가 된 시골집은 피고가 소유한다. 둘째, 원고와 피고는 법정에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상호 유감을 표시한다. 셋째, 원고를 비롯한 나머지 자녀는 피고가 10년 이상 노모를 모셔온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한다. 넷째, 노모는 당분간 장남인 원고가 모시되 피고는 노모나 다른 가족들이 시골집을 방문할 때 가족으로서 따뜻하게 맞이한다.

다행히 원고와 피고 모두 배심원들이 권고한 조정안을 받아들여 조정이 성립됐다. 배심원단에게서 제시한 조정안 중 시골집의 소유관계를 정한 첫째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모두 법률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만일 이 사건에 대해 판결을 선고했다면 그 집의 소유관계에 대해서만 판단할 수 있었을 뿐 노모 부양이나 그들의 가족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그 밖의 조항들은 비법률적인 것들이라고 하여 표시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사재판을 하다 보면 이 같이 법률만을 적용해 판결로 해결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사건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법률만을 적용해 판단하기보다 민사조정법의 목적에서 명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당사자 사이의 상호양해를 통해 조리를 바탕으로 실정에 맞게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

법원에는 판결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제도가 마련돼 있다. 서울, 부산에 이어 올해 4월에는 광주지역에도 법원조정센터가 문을 열어 오랜 기간 법관, 변호사로서 일했던 분들이 전문조정위원으로서 분쟁에 휘말린 당사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있다.

법원의 판결로만 분쟁을 해결하기보다는 이 같이 많은 이들이 민사소송절차에 참여하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법률적인 문제와 그에 수반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법을 법관과 함께 찾음으로써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 또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이 제고되고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증진되길 기대한다.

〈송혜영 광주지법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