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부부인 경우뿐만 아니라 혼인신고는 돼 있지 않지만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가 있다. 이 같은 경우에도 부부 중 한쪽이 파혼의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위자료나 재산분할청구를 할 수 있다.

사실혼이란 당사자 사이에 혼인의 의사가 있고 객관적·사회 관념적·가족질서적인 면에서 부부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생활의 실체가 있는 경우이다. 혼인신고를 전제로 하는 법 규정은 적용할 수 없으나 부부재산의 청산의 의미를 갖는 재산분할에 관한 규정은 적용되는 것이다.

문제는 혼인신고가 돼 있지 않은 두 사람의 관계가 누가 봐도 부부라고 인정될 정도로 부부생활의 실체가 있더라도, 그 중 일방이 법적으로 제3자와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 기혼자인 경우에도 위 논리가 적용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미 존재하는 법률혼이 사실상 이혼상태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혼으로서 보호받지 못한다(판례 입장). 다시 말해 제3자와 혼인신고는 되어 있지만 이미 이혼의 합의가 이뤄져 장기간 별거를 하고 있는 등의 사정으로 사회 관념상 혼인생활이라는 실체를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부부관계가 형해와 되어 있고 서류상으로만 부부로 남아 있다는 특별한 사정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새로 형성된 이중혼적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던 일방이 이를 청산하려고 하는 경우, 통상의 사실혼관계에서 인정되는 재산분할청구권 등의 법적 보호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법 체계가 법률혼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장황하게 위와 같은 법리를 논하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일반인의 정서상으로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법률상 처가 있는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여성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현실에서, 필자가 상담하였던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중혼적 사실혼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누구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이유에서이다.

법적으로 아내가 있는 남자로부터 조만간 이혼하겠다는 말만 믿고 수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해 온 여성이 더 이상 남자를 믿을 수 없다면서 이혼을 결심하였으나, 남자가 재산을 한 푼도 줄 수 없다면서 그냥 살거나 맨손으로 나가라고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그 남자의 법적 아내 역시 상담 여성이 알고 있기에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싶었으나 사업을 하는 남자가 많은 돈을 차용하면서 대부분의 공동 재산을 담보로 제공한데다 자신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워, 이혼하더라도 돈 한 푼 없이 쫓겨나거나 이혼 후에도 빚더미에 앉을 가능성이 큰데다 자녀의 장래를 위해 수년 동안 이혼도 못하고 그냥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양 집안을 오가면서 말 그대로 일부다처제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위 사실혼 상태(법적으로 법률상 아내와 위 남자가 사실상 이혼상태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울 듯 보였다)에 있는 여성은 전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주위사람들로부터 쏟아졌던 몰매 질의 상처만 안은 채 맨손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물론, 위 두 여성들은 서로 극도로 증오하는 상태라고 하였다.

수년 동안의 이중혼적 사실혼 관계가 유지되면서 서로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은 두 여성들의 사례에서 결국 최종적인 피해자는 누구인 것일까? 그들의 관계 속에서 까마득한 미래의 삶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이중혼적 사실혼은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변호사인 필자도 도움을 줄 수가 없다는 말에 그 여성의 얼굴은 후회와 좌절 그 자체였다.

그 누구도 어떠한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할 때 법이 허용하는지, 나중에 잘못되었을 때 자신이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행동을 이미 하였거나 하게 될 경우가 발생하였을 때, 우리 법체계를 한번쯤은 살펴보는 신중함이 있었더라면, 그 여성의 삶이 지금보다는 좀 더 일찍 더 나은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었다.

<이민아 광주지방변호사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