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죄가 있을까. 형법에 규정된 범죄와 처벌조항만도 약 300개에 달하니 특가법이나 도로교통법 같은 특별법을 더하면 1000여 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 이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죄, 다시 말하면 죄(罪) 중의 죄(罪)라고 할 만한 것은 무엇일까.

약 3500년 전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10계명은 인류 최초의 법이라 할 만한데, 그 중 5가지 계명이 오늘날의 범죄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이는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남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것은 쉽게 수긍이 가나,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계명이 왜 그때부터 그렇게 중요했을까.

당시는 문자가 일반화되지 않았으므로, 재판은 주로 목격자를 비롯한 증인의 말(증언)에 의존해서 이루어졌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당시에는 “사람의 모든 죄에 관하여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이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신명기 19:15)하도록 했다. 증인이 1명밖에 없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위증을 특히 엄벌하였는데,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증인이 거짓 증언하여 형제를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처벌”(신명기 19:19)하도록 하였다.

즉, 살인 사건에서 위증한 사람은 살인범에 해당하는 형벌을 주고, 절도 사건에서 위증한 사람은 절도범에 해당하는 형벌을 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형법은, 위증한 사람이 어떤 사건에서 위증했는지를 묻지 않고 일률적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니(형법 152조), 살인죄의 형벌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법 250조)인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고대의 10계명이 더 본받을 만 해 보인다.

성경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두고 거짓말을 했으니 거짓말과 위증의 역사는 곧 우리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원죄(原罪)처럼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어떤 사기 재판을 하는데,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피고인까지 모두 서울 법대생이더라는 웃지 못 할 말처럼, 학력이나 신분, 경제력, 성별, 연령을 가리고 않고 우리 사회 전반에 거짓과 허위가 만연해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 않는가.

필자는 거짓말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사건을 재판하면서 한동안 마음이 아팠다. 대학강사인 A씨는 후배 여자에게 ‘미국에 유학가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결혼한 후 출국시까지 처가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는 시골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공부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사귀던 여자가 외국 생활만을 고집하자 우선 여자를 붙잡을 생각에 거짓말을 하고 결혼한 것이었다. 온갖 핑계로 출국일자를 미루어 가며 거짓말로 3개월을 버텨오던 그는 출국하기로 약속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극심한 강박감에 처를 죽이거나 자신이 죽어 버릴 생각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날 저녁 처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미국행 항공권과 비자를 보여 달라’고 하면서 모욕적인 말을 하자, A씨는 준비한 식칼로 처를 마구 찔렀고 마침 안방에 있던 장인과 장모가 비명을 듣고 뛰쳐나오자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마구 식칼을 휘둘러 세 사람 모두를 살해하고 말았다.

A씨는 범행 직후 신고하여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후 수사과정에서도 범행을 자백하고 눈물로 참회하였으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거짓말은 우리 주변에 늘 가까이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욕이나 아첨하는 말, 폭력적인 언어, 남에게 상처 주는 말, 선의의 거짓말 … 이 모두가 결국은 그 자체로 거짓말이거나 자기행동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 번 내뱉은 작은 거짓말은 별 죄의식 없이도 더 큰 거짓말을 지어낸다.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비록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언어가 이 세상에, 그리고 법정마다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최인규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