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분노 권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크고 작은 언론, 포털(portal), 기타 인터넷 매체에는 오늘도 분노를 유발하는 소식들이 넘쳐난다. 독자들 또한 경쟁하듯 분노의 댓글을 쏟아내고,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분노 권유’의 수준 또한 강도를 더해간다.

‘분노의 기술’이라는 책을 저술한 매튜 맥케이(Matthew McKay) 박사에 의하면 분노 또한 때로는 긍정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분노는 고통스러운 스트레스를 차단하거나 해소하도록 도와주며, 불안이나 상처, 죄책감, 걱정 또는 상실의 감정으로부터 스스로 방어하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쉽게 표출된 분노는 그 자체로 중독성을 가지는데, 이러한 중독성의 분노는 당사자를 점점 더 적절한 행동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성향이 있다. 지속적인 분노는 무력감과 인간관계의 단절을 유발하며, 심리적으로는 물론 신체적으로도 악영향을 초래한다. 매튜 박사는 분노의 대가를 직시하고 대안적인 스트레스 감소 전략을 강구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필자는 광주지방법원에서 민사재판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민사 법정에서 나타나는 ‘분노의 표출’이 해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강해짐을 느낀다. 물론 필자가 초임 판사였던 시절에도 흥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 높여 상대방을 비난하는 당사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재판장이 개입할 경우 외형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재판장의 제지나 경고에도 불구하고 거리낌없이 분노를 쏟아내는 당사자가 적지 않다. 상대방은 ‘나쁜 사람’이므로 법정에서 말할 자격조차 없다는 전제 아래, 상대방이 발언할 때마다 수시로 끼어들고, 인격적 모욕을 가하며, 상대방을 대리하는 변호사에게도 시비를 건다. 물론 평범한 시민의 경우 법정에 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한편으로 ‘얼마나 답답하면 저럴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당사자가 좋은 인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법정에서 분노를 표출한 당사자는 그 순간에는 속이 후련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분노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민사재판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얼마나 조리 있게 전달하고 증거 자료를 어느 정도 충실히 수집하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라고 해도 그 사실을 법정에서 적절히 증명하지 못하면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민사재판을 이기기 위해서는 분노의 표출에 쏟는 에너지를 아껴 이를 자신의 주장을 가다듬거나 증거 수집에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툭하면 흥분하고 재판진행에 비협조적인 당사자와 법정의 룰을 존중하며 이성적인 태도로 재판에 임하는 당사자 중 어느 쪽이 재판부에 신뢰감을 줄지는 자명하다.

상대방의 주장 내용 또는 상대방 증인의 증언이 모순될 경우 중간에 끼어들어 화를 내거나 말을 막을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모순된 진술을 하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침착하게 그 모순점을 지적하여야 한다. 상대방이 거짓 증거나 쟁점을 흐리는 증거를 제출할 경우 이쪽에서는 어떤 증거를 제출해야 상대방의 의도를 분쇄할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혼자 힘으로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면 소송구조를 신청하는 방법도 있으며, 그마저도 어렵다면 법정에서 재판장의 소송지휘를 잘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재판 진행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민사재판을 이기는 것은 사나운 호랑이가 아니라 꾀 많은 여우이다. 우직한 곰도 호랑이보다는 유리할 것이다.

〈윤상도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