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서 법에 대한 전문 지식과 법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작가 존 그리샴(John Grisham)의 소설 고백(The Confession)은 사형제도, 형사재판과 사회적 편견, 진실을 대하는 검사의 태도 등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다.

소설은 캔자스 주 어느 작은 교회에 트래비스 보이엇이라는 뇌종양 환자가 찾아와 고해를 하면서 시작된다. 가석방 상태인 보이엇은 수차례 강간을 저지른 중범죄자로 교도소에서 가석방 출소를 하였고, 그는 뇌종양으로 자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주인공인 목사에게 9년 전의 사건에 대하여 고백을 시작한다.

텍사스주의 작은 마을 슬론, 열일곱살의 백인 고등학교 치어리더 소녀인 니콜이 실종되었고, 시체도 사건의 실체도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경찰과 검찰은 같은 고등학교 미식축구선수였던 흑인 소년 돈테드럼을 살인범으로 지목한다.

백인의 흑인에 대한 증오감과 편견, 유도 신문과 거짓 자백, 수사 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의하여 돈테드럼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고, 아무도 자신의 무고함을 들어주지 않는 답답함에 싸인 채로,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예정된 사형 집행일 4일 전, 보이엇은 자신이 니콜을 강간한 후 살해하였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시체를 묻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청년인 돈테드럼이 고스란히 누명을 썼다고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보이엇의 고백을 들은 목사는 진실을 밝혀 무고한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보이엇과 함께 텍사스로 향하게 된다.

진실을 알고 있으나 자신에 대한 비난이 두려워 사실을 밝힐 용기를 내지 못하는 증인, 돈테드럼의 사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9년여간 헌신한 변호사, 돈테드럼을 처형하는 것이 바른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검사와 경찰, 자신의 그릇된 판단이 옳다고 믿는 판사 등이 등장하면서 소설은 과연 돈테드럼에 대한 사형이 그대로 집행될 것인지를 두고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이 소설은 나에게 사형제도의 존치문제, 형사절차 내에서의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의 문제에 대하여 화두를 던져 주었고, 특히 정의를 밝히는 형사재판의 본질과 진실에 임하는 검사의 태도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혹여 검사인 필자 역시 자신만의 벽에 가로막혀 그동안 진실을 외면한 것은 아닌지, 필자의 결정이 옳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바른 증거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 것은 아닌지, 그동안 사건 관계인들에게 필자가 소설 속의 검사와 같은 모습으로 비추어 진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나를 돌이켜 볼 기회가 되었다.

만약 소설 속 검사가 객관적이고 치우치지 않은 넓은 눈으로 사실을 바라보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바른 판단을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결과나 실적보다는 바른 진실과 정의를 찾아가는 검사였다면, 비록 소설은 재미없겠지만, 돈테드럼에 얽힌 진실은 일찍 밝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소설에서 돈테드럼이 한 말은 가슴에 깊은 여운을 새겼다.

“저는 결백합니다.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텍사스주는 저를 9년 동안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저는 니콜에게 손 한번 댄 적 없었고,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머지않아 당신들도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당신들은 남은 평생 내 생각에 괴로워하게 될 겁니다.”

〈조은수 광주지검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