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와 함께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흉기를 사용한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한 해 발생하는 200만여 건의 범죄 중 살인 등 흉악범죄가 29만여 건에 이른다. 이에 따라 흉악범죄의 피해자 수 또한 급증하고 있고,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 헌법은 묵비권의 보장, 영장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등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또 형사소송법은 범죄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많은 범죄자 보호규정을 두고 있고, 경찰이나 검찰, 법원 등의 형사사법기관은 이를 준수하고 있다. 범죄자는 변호인을 선임해 자신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고, 수사기록을 열람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주소 등 인적 사항을 알 수 있다. 범죄자가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 경우, 국가는 피해자를 포함한 선량한 일반 국민이 납부한 세금으로 범죄자를 위해 국선변호인도 선임을 해 준다.

그러나 범죄 피해자는 예기치 못하였던 범죄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평온 기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 인권이 모두 침해당하고 극도의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로부터 관심과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는 범죄로 인해 신체나 재산상 침해를 입은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심한 경우 대인관계를 기피하거나 우울증 등의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피해자는 형사소송절차상 수사기록 중 범죄자의 진술 부분을 열람하여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지 그리고 범죄자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등 신상정보를 확인하기가 어렵고, 대리인을 선임해 재판 과정에 참여하기도 쉽지 않다. 이와 같이 형사소송절차상 검사와 피고인 위주로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에 피해자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해 심리하는 대상이거나 재판결과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잊힌 존재’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피해자는 범죄로 인한 1차 피해의 고통뿐만 아니라,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받아야 한다. 특히 범죄자가 자신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합의를 시도할 경우 범죄자나 그 주변 사람이 수시로 합의를 이유로 피해자의 주거지를 방문하거나 피해자에게 연락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범죄의 불안에 떨어야 한다. 그리고 범죄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 피해자는 수사기관이나 법정에 참고인 또는 증인으로 출석하여 범죄자와 대면을 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언론의 구체적인 범죄 보도로 인한 사회로부터의 3차 피해 등으로 계속적인 범죄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개명을 하거나 이사를 해야 하는 또 다른 피해를 입고 있다.

사회적 안전시스템의 부족으로 억울하게 피해자가 된 사람, 즉, ‘범죄 피해자’는 국가의 보호절차의 미비로 인하여 오늘도 외롭게 눈물을 흘리는 말 그대로 ‘피해자’가 되고 있다. 범죄를 당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범죄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형사재판을 통해서 범죄자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범죄의 한 축에 서있는 피해자의 행복추구권 등 인권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전문적인 피해자지원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정희 법무법인 지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