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성격 탓에 여자를 사귀는 주변머리도 없었고, 게으름을 피우다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필자는 또래에 비하여 결혼이 늦은 편이다. 결혼이 늦은 탓에 아이를 낳는 것도 늦어, 필자의 아이들은 이제 겨우 1살, 3살이다.

아이들이 나이가 어리면, 24시간 돌봐줘야 하고(참고로 3살인 딸 녀석은 어제도 새벽에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쿵’하는 소리가 집안에 울리는 바람에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게 만만치 않게 힘든 것이라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일찍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된 친구 녀석들은 자녀가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 녀석들은 애들 다 키우고 세상 시름없어 보여 부럽기 그지없다.

검사라는 직업이 일에 쫓기기 마련이어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서부터 새롭게 배우고, 느끼는 것도 많고, 이 덕분에 비로소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된 것도 같다.

대학교 때 성년식을 하였고, 법률에도 만 20세로 성년이 된다고 하였으니, 20살 먹으면 어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할 때도 있었고, 군대 갔다 오고 결혼만 하면 어른이 되었거니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아이를 낳고 키워야 어른이 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육아의 고통, 양육의 책임, 그리고 아이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나서야 ‘어른’이 되는 의미를 조금 더 알게 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 나서야 부모님이 나를 키우시는 동안 느꼈을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데 돈이 얼마 들 것인지, 계산이 서고 나서야 가장으로서 부양의 책임을 느끼고, 술값을 조금씩 줄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애정 덕분에, 내 아이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 즉 이타심이나 인류애 같은 추상적인 말들의 의미에 대하여도 ‘아주 조금’ 이해가 깊어진 듯도 싶다.

직장에서 업무를 하면서도 아이를 낳고 나서 느낌이 달라진 것들이 있다. 아이들이 피해자인 범죄들에 대하여 검사로서 느끼는 감정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검사 생활이라는 것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뭐 그리 여유롭고 ‘엘레강스’한 것은 아니어서, 매일 수많은 사건에 치이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피해자들이 사람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냥 보통명사 그대로 ‘피해자’로 다가오기 마련이며, 개개의 사건들이 갖는 애환들을 들여다 보고 공감하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아빠가 되고 나서는 아이들이 피해자인 범죄에 대하여 만큼은 그 느낌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막 걸음마를 뗀 아들이 차 뒤에서 아장거리는 줄도 모르고 승용차를 후진하다가 아들을 사망하게 한 아버지가 ‘피의자’가 되어 조사를 받으러 왔을 때, 그 아버지가 느꼈을 고통과 자책감이 어느 정도일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게 된 것도 최근이다.

아동보육시설에서 살고 있던 딸의 친구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결국 피해자가 오랜 기간 정든 보육시설을 떠나 친동생과도 떨어져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피해자인 여자 아이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지게 된 것도 최근이다.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가 사실 규명을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고 동분서주하는 것을 보며, 그 부모가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적어낸 진정서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된 것들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무심코 스쳐갔던 것들이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경험들을 통하여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내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학교에 들어가고, 중고등학생이 되어 ‘사고’라도 치게 되고, 학교나 경찰서에 보호자로 불려갈 때가 되면, ‘가해자’ 부모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 같다.



<우석환 광주지검 공판부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