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11명의 범죄자를 변호한 경험을 풀어낸 독일 변호사 ‘페르디난트’의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가벼이 여기는 사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의미가 들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 책을 읽으며 필자에게도 문득 생각나는 사건이 있었다. 40대의 어느 부모가 늦게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것도 외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경비원 생활을 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갔고, 어머니도 파출부 등 고된 일을 하면서 아이를 양육했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공부도 썩 잘했다. 부모님의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으나 아이는 아무런 불평이나 처지 비관 없이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였고,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국내 최고 대학에 입학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는 갑자기 암 판정으로 병석에 눕게 됐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하여 파출부 일을 그만두면서 아이는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현역 신분으로 군에 입대하여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아들은 병역특례업체에 근무하면 현역입대를 하지 않고도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지방에 있는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기로 한 뒤 선불금으로 미리 돈을 받은 아이는 병역특례업체 사장에게 돈을 건네 업체에서 일하지 않고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던 중 지난 2007년 여름 아이는 불법행위가 적발돼 검찰에 구속됐다. 아들의 구속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그 검사실로 찾아와 검사와의 면담을 요청했고, 면담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아들은 자신이 입양아인지도 모르고 있는데, 친부모도 아닌 우리를 위해서 이 고통을 당하다니” 읊조리면서 자신을 원망했다. 그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 몰라 아이에게는 입양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당시 필자는 병역특례비리 기획수사를 진행하면서 소위 최고학부에 다닌다는 명문대생이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금품을 제공한 사건이어서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 구속수사를 결정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를 구속한 이후에야 오히려 부모를 통해 그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필자가 오히려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만연한 고위층·사회지도층 자제의 병역기피 풍조를 바로잡고 공정한 병역의무의 이행을 위해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당위론 앞에서, 그 아이의 성장배경이나 구체적 사정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고, 구속수사가 정말 최선의 결정이었는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이후 그 아이는 병역특례자(산업기능요원) 신분으로는 처음 병역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돼 3개월여가량 구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사정이 참작돼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필자는 위 사건을 계기로 겉으로 드러난 불법행위 자체뿐만 아니라 사건마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자 노력하게 됐다. 올해로 검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12년째를 맞이했으며, 올 들어 그때의 다짐을 계속 지켜나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된다.

비록 한 순간의 실수로 불법행위를 저질렀지만 그 아이가 지금쯤은 마치지 못한 병역의무까지 이행하고 어느덧 30대 초반의 청년이 돼 있을 것이다. 임진년 새해를 맞이하여 그 아이의 행운을 빌어본다.

〈신승희 광주지검 특수부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