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의 법관평가결과가 연일 언론보도에 등장하고 있다. 서울에 이어 부산, 울산, 창원에 이어 광주에서도 최근 지방변호사회가 우수친절법관 5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 소송당사자의 의뢰를 받은 재판 이해관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들이 재판진행과 관련 법관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것은 썩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 내 판사의 반말이나 비속어 등 거친 표현과 고압적인 자세 등이 재판을 받는 당사자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재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하다.

사법권도 여느 권력처럼 국민에게서 나온 것일진대,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법원이 제대로 그 역할을 다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결론에 있어서 옳은 재판’을 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며 그에 못지않게 재판절차가 공정하고 당사자의 주장 내용을 판사가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법관으로 임용되기 전 7년간 변호사였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의뢰인들은 항상 법관이 자신의 주장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 했고 변호사가 사건 담당판사와 점심이라도 같이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판사에게 자세히 이해시켜 달라며 식사 값은 별도로 지급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의뢰인들에게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마라. 접대비 명목으로 돈을 받는 변호사는 사기꾼이다. 판사들이 얼마나 투명하고 열심히 일하는 줄 아느냐”고 하면 그 중 일부는 나에게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판사들과 친하지 못한 변호사’라며 실망스런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소장이나 판결문은 밑에 있는 사무장이나 계장들이 쓰고 변호사나 판사는 도장이나 찍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과거 변호사 시절, 그리고 지금 동료법관들을 살펴봐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법관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청렴하고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있다. 법관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한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고, 때로는 항의까지 받는 경우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해답 중의 하나는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행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영국의 법언(法諺)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실제로 법원의 판결이 부당하다고 시위하거나 소란피우는 사람들이 받은 판결 내용은 다른 판사가 재판을 했더라도 그 결과는 같을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당사자의 말을 듣고 재판하는 시간보다 판결문 작성하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사법현실에 비추어 보면, 법원이 판결문 작성에 지나치게 정성을 기울이는 사이 그와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음을 당사자에게 마음을 열고 친절하게 설득하는데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반문해 볼 일이다. 사실 한 페이지가 겨우 한두 개의 장문으로 이루어진 난해한 판결문을 시원스럽게 해독할 만한 당사자들은 많지 않고, 판결문만으로는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법관으로서 ‘친절’하다는 것은 법정에서 당사자들을 정중하게 대하며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보면 요즈음 법관들은 구술주의와 공판중심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법정에서 당사자들이 하는 말을 듣는 데에 보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 법관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법관은 사건에 대한 인내, 변호사에 대한 인내, 사건 당사자에 대한 인내, 증인에 대한 인내가 필요하다. 법관은 친절함을 갖추어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고 이를 경청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법정에서 법률적으로 의미 없는 감정적인 말을 쏟아내고 모순되거나 무지한 주장을 하고 있는 당사자가 바로 국가의 녹봉을 받는 법관의 존재이유이고 또한 그들이야말로 법관의 ‘의뢰인’인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천재와 바보의 차이가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하듯 우수 법관과 나쁜 법관의 차이라는 것도 결국은 친절 한 끗 차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단정일까?

〈광주지방법원 민사18단독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