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에게 필요한 여러 덕목 중 하나가 ‘경청’의 자세이다. 그런데 경청의 자세는 실무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고 특히 남남으로 만난 부부관계에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해’의 자세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억나는 의뢰인 중에 부인이 제기한 이혼소장을 받고 자신도 이혼을 원하지만 아이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오신 분이 있었다. 그러나 면담을 계속하다 보니 의뢰인의 진심은 부인과의 이혼을 원하지 않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부인의 변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정과정에서 필자는 부인이 암수술 후 우울증을 앓게 되었지만, 의뢰인은 부인이 우울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인은 계속하여 의뢰인에게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말했지만, 의뢰인은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이었다. 참을 수 없는 변덕 또한 치료약의 부작용 중 하나였다.

부인은 의뢰인의 생활방식이며 자신을 대하는 태도 모두 맘에 들지 않고 개선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며 이혼을 강경하게 원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의뢰인과 부인은 함께 부부상담을 한 달에 한 번씩 전문가에게 받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하여 소취하로 조정이 성립하였다.

결국, 앞의 부부의 문제는 서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서로의 차이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고치려 했다는 점이다.

필자도 신혼 초 남편과 ‘당신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등으로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주며 읽어보라고 하였다. 남녀가 완전히 다른 행성에서 왔으니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여자는 관심 받고 보살핌 받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여기며, 그래서 남자에게 사랑을 표현할 때에도 상대를 보살피고 챙겨준다. 하지만, 남자는 이럴 때 짜증이 나고 조종 당하는 느낌, 벗어나고 싶은 심정까지 든다. 남자가 받고 싶은 것은 신뢰이지 보살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가 상심하고 있을 때 문제의 중요성을 감소시켜 위로하려 하지만 여자는 이때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필자는 이 책을 읽어가던 중 처음 생일선물로 샴푸를 준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사귀면서 처음 내 생일을 맞게 된 남편은 무슨 선물을 할지 모르겠다고 망설이며 빈손으로 내게 왔고, 나는 섭섭함에 남편에게 “슈퍼에서 샴푸라도 사 와야지, 빈손으로 온 거야?”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바로 슈퍼로 달려가 사온 것이 샴푸였다. 당시에는 헛웃음만 나왔지만 말대로 한 것이라 필자도 할 말이 없었다.

이제 필자는 남편과 대화를 할 때는 곧이 곧 대로 듣는 남편을 위해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얘기한다. 그 뒤로 서로 감정 표현이 명쾌해져서 다툼은 없어졌다. 그러나 로맨틱하지는 않아 아쉬움은 있다.

〈최지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