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와 오얏 꽃이 자기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그 꽃을 보러 다니느라 그 아래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남에게 도움이 되는 훌륭한 덕을 갖추고 내실을 쌓으면 스스로 자신이나 자신의 업적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명성은 저절로 퍼져 남들이 다 알고 그를 찾는다는 의미다.

중국 한나라 경제 때 이광 장군을 흠모한 사마천이 쓴 말이라고 전해진다. 9년 전인가. 처음 법관으로 임관한 뒤 부장판사님을 따라 일주일에 1시간씩 서예를 배웠다. 1년이 지난 후 서예부원들끼리 미력하나마 그동안 갈고 닦은 결과물을 서로 선보이자 하여 작은 서예전을 열기로 했었다.

각자 좋은 글을 선택한 후 연습해서 가장 자신 있게 쓴 작품을 출품하는 것이었는데, 필자는 좋은 글을 선택하는 것부터 너무 어려웠다. 좋은 글을 찾기 위해 각종 책들과 인터넷을 뒤지기를 며칠, 글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바로 도리불언 하장성로였다.

그리고 심한 감기로 골골해 있던 필자에게 부장판사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이 판사, 판사는 아플 권리도 없어, 당사자들은 분쟁사건을 가지고 법원과 판사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판사가 자기 몸관리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면 되겠어?”

당사자 또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던지 말든지 판사는 당사자들의 분쟁해결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맡은바 직분을 해나가고, 그렇게 하면 결국 당사자나 일반 국민도 판사가, 법원이 분쟁해결을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노력하는지 알아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거의 한 달을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서 연습을 하고 출품한 기억이 난다.

그 뒤로도 필자는 근무지가 옮길 때마다 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무실에 걸어두고 가끔 그 뜻을 되새기곤 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가정지원에 근무하면서는 조정실에 걸어두고 그곳에서 서로 자신은 잘했고, 상대방이 못해서 파탄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하며 싸우는 이혼당사자들에게 위 글을 보여주며 그 뜻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잘못만 들출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방이 잘한 점, 내가 잘못한 점부터 생각해 보고 인정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유했다. 그 후 다시 만난 당사자들 중에는 원만히 화해한 경우도 상당했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으로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 영화가 이슈로 부상하면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국민과 소통을 위해 ‘소통 2012, 국민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국민과의 대화 자리까지 마련했지만 사법 피해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고함과 야유 등으로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민과 법원 사이에 계속 불신만이 쌓여가고 있는 지금 다시 ‘도리불언 하자성로’를 음미해 본다. 또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부지피이지기(不知彼而知己) 일승일부(一勝一負)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 매전필패(每戰必敗).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으나,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승과 패를 각각 주고받을 것이며, 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조차도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패배한다는 의미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지만, 지금 현재의 우리 국민과 법원이 새롭게 해석해 볼 만한 글이기도 한 것 같다. 국민과 법원, 서로 알게 되면 불신의 늪에 빠질 염려가 없을 것이지만, 서로 모른 상태가 계속된다면 더 깊은 불신의 늪에 빠질 것이다. 서로 알리고 또 상대를 알아가는 노력이 국민에게도, 법원에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이양희 광주지법 민사25단독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