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의 어느 날. 누가 합격자 명단에서 본인 이름은 한눈에 보인다고 말했던가! 너무 긴장한 필자는 가나다 세로 순이었던 합격자 명단을 가로 순으로 읽어 버렸고, 한참만에야 구석에 숨어 있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고단했던 고시 준비생 생활이 끝나고 드라마에서 보아 오던 멋진 인생이 시작되겠거니 기대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법조인은 분쟁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결코 쉽지 않은 직업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필자는 한국소비자원에 설치된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선임변호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사업자와 소비자 간에 발생한 분쟁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위해 설립된 위원회로, 필자는 발생한 분쟁에 대해 사업자의 책임이 인정되는지, 인정된다면 그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법률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맡았다. 사업자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소비자는 곧바로 “기업으로부터 돈 받은 거 아니냐”는 말을 내뱉었다. 소비자에게 배상하라는 결론이 나면 기업들은 “소비자 편에서만 결론을 내리는 거 아니냐”며 불만을 내뱉었다. 분쟁의 양 당사자를 만족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필자는 변호사 중에서 검사로 선발됐다. 사건의 성격은 달라졌지만 어떻게 하면 적정하게 사건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고민은 계속되었다. 형사사건의 고소, 고발인들은 필자가 상대했던 소비자들보다 더 마음이 상해있었다. 놀라운 건 민사에만 활용되는 줄 알았던 조정제도가 형사 사건에서도 활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범죄피해자보호법 제41조는 “검사는 피의자와 범죄피해자 사이에 형사분쟁을 공정하고 원만하게 해결하여 범죄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수사 중인 형사사건을 형사조정에 회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엄정한 국가형벌권 행사 못지않게 피의자와 피해자 간의 진정한 화해, 피해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자는 처분을 결정하기 전 형사조정위원회에 사건을 회부해 양 당사자 간의 원만한 합의를 기다렸다. 때론 조정에 응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형사조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많고, 원만한 합의를 통해 좋은 결과가 얻어지는 경우가 더 많기에 필자는 분쟁의 당사자들에게 형사조정을 권한다. 조정에 응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자유다. 조정에 응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고, 조정에 응한 경우에도 서로 의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수사가 이루어지므로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 조정이 성립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피해자가 피의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이른바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피의자는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는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가능하게 된다.

진심으로 반성하며 피해회복에 노력하는 피의자와 그렇지 않은 피의자가 다른 처분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범죄피해자보호법 제45조 제4항도 “검사는 형사사건을 수사하고 처리할 때 형사조정 결과를 고려할 수 있다”고 규정해 그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

필자가 현재 근무하는 광주지방검찰청의 경우 형사조정이 활성화돼 매일 형사조정위원회가 열리고 있으며, 2011년 한 해 동안 661건의 사건이 조정에 회부돼 그 중 369건에 대해 원만하게 조정이 성립됐다.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해 수 건의 쌍방 고소를 한 피의자 겸 피해자들이 조정 성립 후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거나 어렵게 트럭을 몰며 생계를 유지하다 교통사고를 낸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자 피해자가 피해금액을 분할지급하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오늘도 분쟁 속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검찰청을 찾았던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검찰청을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

〈김금이 광주지검 형사 제3부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