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복의 무게와 판사의 고민
2012년 03월 12일(월) 00:00 가가
얼마 전 모 음식점이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최상위권에 랭크된 적이 있었다. 필자와 함께 점심을 먹는 일행들도 가끔 이용하는 프랜차이즈 업체이기에 관심 있게 봤더니 음식점 종업원이 임신부를 폭행하였다는 임신부 측 주장이 그대로 기사화되면서 해당 음식점 측에 대한 비난 여론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의 반론이 제기됐고 당시 상황이 녹화된 CCTV 자료 역시 일부 임신부 주장과 어긋났다.
비슷한 시기에 어린 아이 얼굴에 뜨거운 국물을 쏟아 화상을 입게 하고 아무런 조치 없이 사라졌다는 이른바 ‘국물녀 사건’이 크게 이슈화됐으며, 이 사건 또한 국물녀로 비난받은 당사자의 해명과 CCTV 영상이 확인됨에 따라 사실관계가 피해자 측 주장과는 꽤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물론 이는 모두 언론 보도에 근거한 내용으로,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인지 필자로서는 알 수 없다.
두 사건 모두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한 양 당사자의 주장이 판이하게 달라 세간의 이목을 끌었는데, 송사를 책임지는 판사로 근무한 지 이제 고작 만 5년이 된 필자로서도 위와 유사한 사례를 흔히 경험하게 된다.
원고와 피고 또는 피해자와 피고인이 서로 조금씩 거짓말을 하거나 한쪽이 완전히 거짓말을 꾸며내거나 하는 일도 많을 것이고,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관계만을 주장하다 보면 같은 사건의 양 당사자가 완전히 다른 사건을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CCTV 녹화자료처럼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객관적인 자료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더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 항상 밝혀진 진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양쪽 말을 다 들어본다 하더라도 말만 듣고는 진실이 무엇인지 가려내기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대부분의 판사가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하다 보니 주로 문서 등 객관적 증거 위주로 심리를 진행하게 되고, 특히 많은 사건을 신속히 처리해야 하는 현실에서 한쪽 당사자의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나 사건의 핵심에서 다소 비껴나간 것으로 보이는 진술을 충분히 들을 기회를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판결을 함에 있어서는 증거에 기초해 논리적인 판단을 하여야 할 것이지만, 재판 과정에서 정작 사건 당사자의 목소리는 소외되다 보니 오해와 억울함만 쌓이는 일도 충분히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권위적이고 당사자에게 입증의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는 판사의 모습을 그려낸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공감하는 것을 보면, 성실하게 사건 기록을 파악하고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다수의 판사로서는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 정도이지만, 국민이 사법부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사실 모든 사건에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진실을 말하는 당사자가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 패소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아무리 훌륭한 판사라도 평생 무수한 ‘잘못된 판결’을 할 수밖에 없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주어진 증거자료 안에서 최대한의 진실을 끌어내어 올바른 판단을 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진실을 끝내 밝혀내지 못하는 억울한 당사자를 위해 그들이 마지막으로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인 법원이 당사자의 입장에서 잘 들어주고 충분한 절차적 기회를 부여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반대로 돈을 주어야 할 사람이 돈을 주라는 법리상 당연한 판결을 받았더라도, 사건의 해결과는 무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 겪었던 어려움 등에 대하여 판사 앞에서 토로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면, 무언가 대단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가끔 조정절차에서 판사의 ‘귀 기울임’에 감사한 마음에서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겠다는 당사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승복할 수 있는 재판은 법리 적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떤 직업이라도 다 나름의 어려움은 있는 것이겠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실을 두고 진실이 무엇인지를 가려 타인의 신체와 재산에 큰 영향을 미칠 결정을 해야 하는 판사 법복의 무게란 감당하기 쉽지 않다. 어떤 재판을 해야 할지에 대한 판사의 고민은 끝날 수 없는 것 같다.
〈안금선 광주지법 민사9단독 판사〉
두 사건 모두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한 양 당사자의 주장이 판이하게 달라 세간의 이목을 끌었는데, 송사를 책임지는 판사로 근무한 지 이제 고작 만 5년이 된 필자로서도 위와 유사한 사례를 흔히 경험하게 된다.
CCTV 녹화자료처럼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객관적인 자료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더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 항상 밝혀진 진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양쪽 말을 다 들어본다 하더라도 말만 듣고는 진실이 무엇인지 가려내기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최근 권위적이고 당사자에게 입증의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는 판사의 모습을 그려낸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공감하는 것을 보면, 성실하게 사건 기록을 파악하고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다수의 판사로서는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 정도이지만, 국민이 사법부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사실 모든 사건에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진실을 말하는 당사자가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 패소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아무리 훌륭한 판사라도 평생 무수한 ‘잘못된 판결’을 할 수밖에 없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주어진 증거자료 안에서 최대한의 진실을 끌어내어 올바른 판단을 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진실을 끝내 밝혀내지 못하는 억울한 당사자를 위해 그들이 마지막으로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인 법원이 당사자의 입장에서 잘 들어주고 충분한 절차적 기회를 부여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반대로 돈을 주어야 할 사람이 돈을 주라는 법리상 당연한 판결을 받았더라도, 사건의 해결과는 무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 겪었던 어려움 등에 대하여 판사 앞에서 토로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면, 무언가 대단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가끔 조정절차에서 판사의 ‘귀 기울임’에 감사한 마음에서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겠다는 당사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승복할 수 있는 재판은 법리 적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떤 직업이라도 다 나름의 어려움은 있는 것이겠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실을 두고 진실이 무엇인지를 가려 타인의 신체와 재산에 큰 영향을 미칠 결정을 해야 하는 판사 법복의 무게란 감당하기 쉽지 않다. 어떤 재판을 해야 할지에 대한 판사의 고민은 끝날 수 없는 것 같다.
〈안금선 광주지법 민사9단독 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