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공판부 검사로 일하고 있던 때의 일이다. 공판부는 사무실을 여러 명의 검사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마침 그날은 재판이 없는 날이어서 필자는 사무실에서 기록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두운 표정의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와 동료 검사에게 인사를 하고 그 검사의 맞은편에 앉았다. 필자는 단순히 소송관계인이 면담을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다시 기록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 남자의 행동은 왠지 불안해 신경이 자꾸 쓰였고 필자는 호기심이 생겨 자연스레 그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동료검사에게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가방 안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동료 검사에게 보여주면서 “참 귀엽지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동료검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참 예쁘네요”라고 답했고, 그 남자는 “요즘 셔플댄스가 유행이라면서 제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는 밝은 아이였습니다.”라고 말을 한 후 가방에서 약봉지를 꺼내 보여줬다.

“요즘 저는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약을 먹고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약기운이 떨어지면 잠에서 깨어나고 다시 아이 생각 때문에 괴롭습니다. 아이 엄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제 아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서도 썼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그렇게 만든 녀석들이 버젓이 잘 살아있는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차마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소한 그 녀석들을 함께 데려가기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어린 녀석이 아파트 계단 난간에 매달려서 얼마나 춥고 아팠을까요. 거기다가 부검을 하면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을 생각하면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너무나도 괴롭고 미칠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잔잔하던 공판부 사무실에 이 남성의 절규가 퍼져나갔다. 이 남자는 바로 지난해 연말 학교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 계단의 난간에서 목을 매 자살했던 어떤 중학생의 아버지였다. 필자는 한참을 듣고 있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아 결국은 사무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같은 학생들의 폭력과 괴롭힘이 한 아이의 죽음과 한 가정의 파탄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온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이 사건은 필자가 지난 연말에 당직근무를 하면서 사건 발생 상황을 보고받은 사건이라서 그런지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요즘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면서 청소년의 범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 검찰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청소년 범죄의 처리 지침을 별도로 만들어 시행하고 있고, 각급 학교에 강연을 나가기도 하며 자체적으로 학교폭력 예방 교육에 나서는 등 노력하고 있다.

필자 역시 최근에는 청소년의 범죄에 대해 좀 더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다. 과거에는 초범인 청소년에 대해 죄질이 매우 불량한 경우가 아니라면 청소년의 반성문과 보호자의 서약서를 받은 후 짧은 면담을 하고 기소유예(경미한 범죄에 대해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결정)를 내렸지만 최근에는 초범의 경우라도 교육을 받게 하거나 선도조건을 부과하는 등 범행을 저지른 청소년이 좀 더 반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학교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폭력이 발생한 후 그 폭력에 대해 수사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한 뒤 범죄자를 교화하고 재범을 방지하는 역할이 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청소년들의 범죄 특히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마음을 기를 수 있는 참교육만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각 가정에서 아이들의 심성 교육에 최선을 다 해야 할 것 같다. 더 이상의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과 그로 인하여 눈물 흘리는 아버지가 없기를 희망한다.

〈박인우 광주지검 형사1부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