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KBS에서 방영하는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에는 ‘사마귀유치원’이라는 코너가 있다. ‘뽀뽀뽀’나 ‘하나둘셋’ 등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리메이크해 개그맨 정범균(사마귀), 최효종(일수꾼), 조지훈(쌍칼), 박성호 등 4명의 교사가 차례대로 율동, 진학상담, 구연동화 등으로 어린이들에게 사회생활의 노하우를 전하는 구성이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천사 같은 모습으로 아름답고 밝은 세상을 보여주며 동심을 키워주지만 사마귀유치원의 교사들은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 학교폭력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재미를 주고 있다.

언젠가 사마귀유치원에서 “친구가 쭈쭈바 사 먹게 200원을 빌려달라고 할 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학생이 질문하자 개그맨 박성호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들려준다.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차용증은 써야지∼” 이어 박성호는 도장이 없다면 엄지를 이용해 지장을 찍도록 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이를 보는 방청석은 물론 함께 보던 필자의 가족들도 박장대소했지만, 필자는 왠지 모를 씁쓸하고 우울한 감정이 마음 한 켠에서 꿈틀댔다.

필자가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고 의뢰인들과 상담을 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난감함을 느낀 경우 중의 하나가 의뢰인의 사정은 딱하고 억울한데 승소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의 부족으로 사건해결이 벽에 부딪히는 경우였다.

의뢰인들의 상당수가 지인과의 거래에 있어서 거액의 돈을 빌려주면서 차용증도 쓰지 않았고, 상당한 가격의 물품거래를 하면서도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사람을 믿었기 때문이다. 믿었기에 선뜻 그냥 큰 돈을 빌려줬고, 믿었기에 그냥 물건을 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허망한 것이어서 상대방이 그 믿음을 나쁘게 이용하거나 변심한다면 그 신뢰는 빌려준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깨져버리고 만다.

오랜 친구에게 거액의 차용금을 떼이는 것은 기본이요, 믿었던 증권회사 직원이 투자금을 중간에서 빼돌리기도 하고, 땅을 팔아 놓고 등기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세월이 흐른 후 계약서가 없었음을 이용해 매수인에게 불법점유를 주장하며 토지 인도를 요구하는 매도인도 있었다.

필자는 전남 사회적 기업 지원센터 운영위원회 감사로 있으며, 몇 차례 사회적 기업 대표 및 실무자들을 상대로 법률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모든 법률관계에 있어서 가능하면 증거를 남기라는 조언을 매번 빠뜨리지 않고 한다. “차용증을 써라. 차용증을 받기 거북하면 현금거래를 하지 말고 계좌이체를 해서 기록을 남겨라. 공사계약에 있어서는 공사 진행 상황에 따라서 꼭 사진을 찍어라” 등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다. 박성호의 개그를 들으며 마냥 즐겁게 웃을 수만도 없었던 것이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현실에서는 필자가 사마귀유치원의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필자도 서로 믿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라는 이상향을 꿈꾸고, 법 역시 민법 제2조 제1항에서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며 신의를 강조한다. 그러나 무턱대고 믿는 것은 도리어 상대방에게 신의를 저버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사마귀유치원의 정범균의 어투로 끝을 맺어볼까 한다.

“어린이 여러분, 잘 들으셨죠? 돈거래를 꼼꼼하게 하는 거 그게 그 순간에는 소심해 보여도 오히려 사랑과 우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거 잊지마세요∼”

〈고봉수 법무법인 안양 광주분사무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