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와 과학수사
2012년 04월 09일(월) 00:00 가가
필자가 광주지방검찰청 형사제3부에서 강력 및 과학수사를 전담하게 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강력사건은 강도,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전담해 사건을 처리하는 것인데, 과학수사전담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과학수사를 이야기하면 흔히들 미국드라마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시리즈’를 떠올린다.
2000년 10월 6일 미국 CBS 방송국에서 첫 방송된 CSI 시리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발생한 각종 강력범죄나 지능범죄를 부검, 현장감식, 각종 과학적 증거분석기법 통해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이용해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보여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도 통계로는 CSI 시리즈를 전세계 약 7300만 명이 시청하고 있으며, 2011년도에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를 가진 텔레비전 시리즈물로 보고됐다고 한다.
필자도 이 시리즈를 보면서 때로는 너무나 신속한 증거수집과 범인검거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반면 선진적인 과학적 수사기법과 수사지원시스템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론 우리의 수사현실과 비교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과학수사기법을 우리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들일까?
검찰의 과학수사는 대검찰청의 디지털포렌식센터(DFC) 내 과학수사담당관실, 디지털수사담당관실, DNA수사담당관실에서 담당한다. 일선 검찰청의 과학수사 수요에 대검찰청의 각 부서가 서버 및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휴대전화 등 각종 디지털기기의 분석,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검사), 행동분석, 진술분석, 문서감정, 영상분석, 음성분석, 화재수사지원, 마약감식, 사건DNA 감정 등의 업무를 지원하고 있는 구조다.
또 전국 고등검찰청에도 자체 디지털수사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광주고등검찰에서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모바일기기 등의 분석을 지원하는 디지털수사팀이 있다. 미국과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과학수사 수준은 서래마을 영아살인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첨예하게 양 당사자의 주장이 대립하는 고소사건이나 피의자가 부인하는 강력사건 등을 문서감정, DNA감정, 심리생리검사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8월 “경찰이 병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겠다”며 야간에 파출소에 돌을 던져 방충망을 부수고 그 범행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10대가 구속기소됐다. 블로그에 올려진 동영상에는 인적이 드문 한밤중에 피의자가 ‘대한민국 경찰이 자신을 못 잡으면 병신’이라는 등의 말을 하며 범행을 저지르는 장면과 도주하는 장면 등이 생생히 녹화돼 있었다. 그러나 수사팀에 붙잡힌 피의자는 동영상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이 본인이 아님을 주장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대검 음성분석실은 범행 당시를 촬영한 동영상 속의 음성과 영상녹화 조사 시 피의자 음성의 동일인 여부를 분석에 착수했다. 결국 동영상 속의 음성과 피의자의 성문 특징이 유사하고, 두 음성의 높이도 각각 118.1Hz, 118.2Hz로 거의 동일하며 발음 역시 독특한 특징이 관찰돼 동일인으로 판정됐다. 이 10대는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또 대검 문서감정실에서도 최근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보증을 서 준다고 백지에 도장을 찍어줬는데, B가 그 백지로 A의 토지를 B자신이 매입하는 내용의 부동산매매 계약서를 만들면서 A가 B를 사문서위조로 고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건에서 문제의 부동산매매 계약서상에 날인된 A의 인영과 매도인란의 B의 성명필적이 서로 겹쳐서 있다면, 과연 도장을 먼저 찍은 것인가 아니면 필적을 먼저 기재한 것인가를 밝혀냄으로써 고소인과 피고소인 중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CSI 드라마는 약 60분 동안 복잡한 강력사건 등을 재미있고 쉽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수사현장에서 과학수사의 결과물은 드라마와 같이 쉽게 도출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그 쉽지 않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지금도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 종사자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종혁 광주지방검찰청 형사제3부 검사〉
필자도 이 시리즈를 보면서 때로는 너무나 신속한 증거수집과 범인검거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반면 선진적인 과학적 수사기법과 수사지원시스템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론 우리의 수사현실과 비교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과학수사기법을 우리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들일까?
실제로 지난 2011년 8월 “경찰이 병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겠다”며 야간에 파출소에 돌을 던져 방충망을 부수고 그 범행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10대가 구속기소됐다. 블로그에 올려진 동영상에는 인적이 드문 한밤중에 피의자가 ‘대한민국 경찰이 자신을 못 잡으면 병신’이라는 등의 말을 하며 범행을 저지르는 장면과 도주하는 장면 등이 생생히 녹화돼 있었다. 그러나 수사팀에 붙잡힌 피의자는 동영상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이 본인이 아님을 주장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대검 음성분석실은 범행 당시를 촬영한 동영상 속의 음성과 영상녹화 조사 시 피의자 음성의 동일인 여부를 분석에 착수했다. 결국 동영상 속의 음성과 피의자의 성문 특징이 유사하고, 두 음성의 높이도 각각 118.1Hz, 118.2Hz로 거의 동일하며 발음 역시 독특한 특징이 관찰돼 동일인으로 판정됐다. 이 10대는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또 대검 문서감정실에서도 최근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보증을 서 준다고 백지에 도장을 찍어줬는데, B가 그 백지로 A의 토지를 B자신이 매입하는 내용의 부동산매매 계약서를 만들면서 A가 B를 사문서위조로 고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건에서 문제의 부동산매매 계약서상에 날인된 A의 인영과 매도인란의 B의 성명필적이 서로 겹쳐서 있다면, 과연 도장을 먼저 찍은 것인가 아니면 필적을 먼저 기재한 것인가를 밝혀냄으로써 고소인과 피고소인 중 누구의 주장이 사실인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CSI 드라마는 약 60분 동안 복잡한 강력사건 등을 재미있고 쉽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수사현장에서 과학수사의 결과물은 드라마와 같이 쉽게 도출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그 쉽지 않은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지금도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 종사자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종혁 광주지방검찰청 형사제3부 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