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분쟁의 새로운 대안, 조정제도
2012년 04월 23일(월) 00:00 가가
누군가에게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240만 원을 빌려줬는데 갚지 않는다. 몇 번을 전화해도 소용없다. 이제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빌려준 사람은 너무 속이 상하고, 상대방은 분명 그릇된 사람이다. 소송을 해야 할까?
소송을 하려면 소장을 작성해야 하는데, 직접 하려면 엄청난 품이 들고, 전문가에게 맡기려면 돈이 든다. 우여곡절 끝에 소장을 작성해 법원에 접수했다. 그런데 인지대와 송달료를 납부해야한다. 재판기일에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고 금쪽같은 여름휴가를 앞당겨 재판기일에 참석했다. 상대방이 항변하는 바람에 재판기일은 또 잡혔고, 재판은 계속 이어졌다.
몇 번의 재판 기일이 진행된 뒤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으나, 상대방이 항소를 했다. 내가 1심에서 승소했다고 해서 항소심에 무관심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항소심 재판에도 참석했고, 드디어 승소판결이 확정됐다. 지금까지의 수고를 생각하면 소송비용까지 꼭 받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소송비용 확정 재판을 받아야 한다(물론 여기에서 휴가로 인한 손해나 법원에 오는 차비 등까지 인정해 줄 리 없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돈을 손에 쥐려면 판결문을 가지고 상대방의 재산에 집행을 해야 하는데 상대방 명의로 된 재산이 없다면? 승소판결문은 무용지물이 된다.
이는 보통의 민사재판 과정이다.
똑같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사례에서 피해자가 소장을 제출했더니, 이번에는 법원이 조정기일을 잡았다며 출석하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조정기일에 나간 피해자는 이렇게 소송까지 온 이상 어떤 양보도 어렵고, 지연손해금까지 꼭 받아야겠다고 말했다. 답변서에서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빚이 없다고 잡아떼던 채무자가 조정기일에 나와서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며 1년 안에 변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으나 사업이 제대로 안 됐고 현재는 직장에 취업해 매달 15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기는 하나, 생활비로도 빠듯하다는 사정을 설명한 것이다. 판사 또는 조정위원은 소송을 제기했으니 상대방도 만날 수 있고, 이렇게 조정의 장이 열린 것이라며 앞서 본 소송의 단점과 뒤에 기술된 조정의 장점을 거론하며 조정을 권유했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된 끝에, 피고가 이번 달부터 매달 20만 원씩 1년 동안 분할변제하기로 하되, 1회라도 연체시에는 즉시 잔액 전부 및 이에 대한 연 20%의 지연손해금을 변제하는 것으로 조정이 성립됐다.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피고는 분할 변제 약속을 지키고 있다.
민사분쟁의 해결수단으로는 민사소송이 유일한 것은 아니며, 협상, 조정, 중재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소송보다 협상이나 조정이 먼저 분쟁 해결에 이용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근대적 의미의 소송제도가 도입되기 전부터 대부분의 분쟁이 집안이나 지역의 어른 등에 의한 조정으로 해결돼 왔다.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협상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협상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사자 간 대화가 가능해야 하고 대화가 어렵다면 합의는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제3자인 조정자가 당사자 간 대화 중단의 원인을 찾아내 그 장애를 없애고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게 한다면, 합의가 성립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조정은 소송과 비교할 때, 신속하고, 저렴하며, 당사자의 이익을 충족하는 다양한 결론을 내리는 데에 적합하다. 또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당사자의 명예와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며, 스스로 합의에 이른 만큼 당사자에게 만족감을 주고, 당사자가 사실관계에 대해 다투는 비율을 줄일 수 있다. 조정에서 합의한 내용을 자진해 고소를 당한 사람이 이행할 가능성이 크고, 장래에 분쟁이 다시 발생하더라도 당사자 스스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조정이 모든 민사분쟁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앞서 든 예는 조정에 적합한 아주 간단한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다. 분쟁의 성질과 내용에 따라서는 소송과 재판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이 조정은 소송절차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으로, 소송제도와 함께 전체적으로 하나의 효율적인 분쟁 해결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정영하 광주지방법원 민사 13단독 판사〉
소송을 하려면 소장을 작성해야 하는데, 직접 하려면 엄청난 품이 들고, 전문가에게 맡기려면 돈이 든다. 우여곡절 끝에 소장을 작성해 법원에 접수했다. 그런데 인지대와 송달료를 납부해야한다. 재판기일에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고 금쪽같은 여름휴가를 앞당겨 재판기일에 참석했다. 상대방이 항변하는 바람에 재판기일은 또 잡혔고, 재판은 계속 이어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돈을 손에 쥐려면 판결문을 가지고 상대방의 재산에 집행을 해야 하는데 상대방 명의로 된 재산이 없다면? 승소판결문은 무용지물이 된다.
똑같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사례에서 피해자가 소장을 제출했더니, 이번에는 법원이 조정기일을 잡았다며 출석하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조정기일에 나간 피해자는 이렇게 소송까지 온 이상 어떤 양보도 어렵고, 지연손해금까지 꼭 받아야겠다고 말했다. 답변서에서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빚이 없다고 잡아떼던 채무자가 조정기일에 나와서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며 1년 안에 변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으나 사업이 제대로 안 됐고 현재는 직장에 취업해 매달 15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기는 하나, 생활비로도 빠듯하다는 사정을 설명한 것이다. 판사 또는 조정위원은 소송을 제기했으니 상대방도 만날 수 있고, 이렇게 조정의 장이 열린 것이라며 앞서 본 소송의 단점과 뒤에 기술된 조정의 장점을 거론하며 조정을 권유했다.
민사분쟁의 해결수단으로는 민사소송이 유일한 것은 아니며, 협상, 조정, 중재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소송보다 협상이나 조정이 먼저 분쟁 해결에 이용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근대적 의미의 소송제도가 도입되기 전부터 대부분의 분쟁이 집안이나 지역의 어른 등에 의한 조정으로 해결돼 왔다.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협상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협상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사자 간 대화가 가능해야 하고 대화가 어렵다면 합의는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제3자인 조정자가 당사자 간 대화 중단의 원인을 찾아내 그 장애를 없애고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게 한다면, 합의가 성립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조정은 소송과 비교할 때, 신속하고, 저렴하며, 당사자의 이익을 충족하는 다양한 결론을 내리는 데에 적합하다. 또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당사자의 명예와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며, 스스로 합의에 이른 만큼 당사자에게 만족감을 주고, 당사자가 사실관계에 대해 다투는 비율을 줄일 수 있다. 조정에서 합의한 내용을 자진해 고소를 당한 사람이 이행할 가능성이 크고, 장래에 분쟁이 다시 발생하더라도 당사자 스스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조정이 모든 민사분쟁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앞서 든 예는 조정에 적합한 아주 간단한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다. 분쟁의 성질과 내용에 따라서는 소송과 재판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이 조정은 소송절차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으로, 소송제도와 함께 전체적으로 하나의 효율적인 분쟁 해결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정영하 광주지방법원 민사 13단독 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