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만으로 법조인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법연수원에서 2년 동안 혹독한 교육을 거쳐야 비로소 법조인이 된다. 이곳에서는 실제 기존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기록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판결문이나 공소장, 소장 등을 직접 작성하면서, 그리고 이미 법원, 검찰, 변호사로 20년 내외의 경력을 가진 교수의 지도 아래 이론이 아닌 실무를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사법연수원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그에 따르는 심리적 압박감에 쫓기면서 비로소 진정한 법조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연수원에서 필자는 수업시간마다 법조인이란 타인의 생명·신체·재산을 다루기 때문에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해 항상 최선을 다해야하며, 본인의 실수나 과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야했다. 솔직히 필자가 속한 반의 지도교수들은 이 점을 특히 강조했고, 반복되는 당부 말씀에 일부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가 법조인이 된 지금 그 교수님의 가르침은 매일 마음에 새겨야 할 신조가 되고 있다.

2년 전 필자는 형사사건 가해자를 변호하게 됐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사건이었는데, 70대 중반의 할아버지가 60대 후반의 할아버지를 사소한 다툼 끝에 폭행,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는 내용이었다. 우선 1심 기록을 꼼꼼히 살피는 일부터 시작했다. 피해자의 진술이 수시로 바뀌어 신빙성이 없어 보였고, 목격자들은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다툼이 있기는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을 말렸고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심각한 폭력을 행사한 사실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1심 법원에 출석한 증인들이 한결같이 피고인이 피해자의 멱살을 잡은 사실을 인정, 경미한 폭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피해자의 현재 상태와 피고인의 폭행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 보다 명백한 증거가 필요한 상태였다. 1심에서 이미 피해자가 치료를 받았다는 병원 5곳에 사실 조회를 해 회신결과가 제출된 상태였으나, 필자는 항소심 법원에 이 가운데 2곳을 선택해 다시 사실조회를 신청, 증거 채택을 받았다. 그렇게 병원 2곳의 사실조회신청 결과와 피해자가 기존 진료 기록들을 제출하는 방법으로 피해자의 진술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와 같이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이 사건의 재판은 6개월 가까이 소요됐지만 결국 피고인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사실 항소심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진도군의 조그만 섬마을에 거주하는 피고인은 배와 버스를 타고 광주까지 나와야 했으므로 재판이 있는 날이면 으레 1박2일을 재판에만 매달려야 했다. 필자는 가끔 피고인이 약식명령 벌금 300만 원에서 정식재판을 청구, 벌금이 200만 원으로 감액된다면 저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완강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을 보면서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 새로운 증거들을 수집하고 1심 기록 중 간과된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무죄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피고인은 판결 이후 추석이 되자 기어이 필자에게 멸치 한 박스를 보내왔다. 본인의 이야기를 믿어주고 끝까지 들어 주어 고맙다고, 본인은 태어나서 평생 그 마을을 떠나 본 적이 없는데 그곳에서 범죄자나 거짓말쟁이로 살 수는 없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이제는 필자의 신조가 돼 버린 연수원 교수님의 가르침과 함께 한 가지 더, 나를 믿고 의지하는 의뢰인들을 필자 또한 믿고 그의 편이 돼 그가 상심하지 않도록 마음까지도 보호해 줄 수 있는 그런 법조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봤다. 진도 할아버지 사건 후 2년이 지난 지금, 싱그럽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5월의 어느 멋진 날, 계절에 현혹되어 혹시라도 해이해졌을지도 모르는 나의 다짐을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조영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