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휴대폰사업의 약진으로 주가 100만원 시대를 열더니 급기야 세계 굴지의 소니와 노키아를 넘어 애플과 경쟁하는 세계 최대의 전기전자 업체로 그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성과로 인해 국부가 증가하고, 국위가 선양됨에 따라 국민 개개인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비약 성장함에 따라 국민이 삼성에 바라는 것 또한 그만큼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기업 삼성이 이 같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도덕적 기준과 비전을 가지고 있을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비자금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는 비록 미흡하지만, 이를 통해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조성 및 은닉, 상속세 탈루, 편법을 동원한 총수 자녀의 경영권승계, 그 과정에서 관련 계열사들의 업무상 배임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것들은 법적·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들이었다.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 역시 소수지분만을 가진 대기업총수가 계열사별 순환출자 등 지분구조를 이용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계열사를 제왕적 지위로 지배하고,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탈세를 저지르고 있다. 또 2세, 3세 경영자에게 경영권을 승계함에 있어 증여세나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고 여러 위법행위를 저지르다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그룹 총수가 형사처벌을 받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끊이지 아니하고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2세, 3세 경영자로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경영권을 가지지 못한 2세나 방계 형제들에게 대기업의 알짜 사업을 헐값에 또는 편법으로 양도하는 사례, 대기업이 인적·물적 인프라를 지원해 신규법인을 설립한 후 중소기업들의 사업영역에 진출, 영세 중소기업이나 소상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에 진출해 중소기업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사업조정제도를 통해 사업진출 유예기간을 두거나 진출한 사업에 대해 생산량 등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정절차를 규정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이 있다. 필자도 대기업이 관계회사를 이용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돼 소송을 진행한 바 있는데, 관련판례나 사례를 찾을 수 없어 애를 먹었다.

사건을 진행하며 살펴본 결과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위 법이 지나치게 엉성하게 만들어져 대기업이 차명회사를 이용하거나 회사관계인 또는 총수의 친인척을 내세워 중소기업영역에 진출한 때에는 이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보니 이러한 사업조정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아니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국회가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위 법을 만들었지만 과연 실제로 중소기업을 보호할 의지가 있었는지, 여론에 밀려 법을 만들긴 했으나 오히려 대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엉성한 그물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효율적이고, 신속한 성장을 위해 대기업 위주의 경제체제를 만들어 경제의 외형 성장이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전반이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경영에 대한 감시를 지나치게 소홀히 한 나머지 법의 존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낳은 것은 아닌지 자성할 때다.

〈이정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