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보호해주는 국가, 그리고 판결
2012년 06월 04일(월) 00:00 가가
‘국가’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영토를 보유하며, 거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을 가진 집단” 정도다.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과목에서 ‘국가’는 목적이 질서와 안전의 확립이라는 점, 유지수단이 법규범과 그것의 적용이라는 점, 영토가 지리적 경계를 이루며 사법권의 대상이 된다는 점, 그리고 주권을 보유한다는 점 등에서 다른 사회조직과 구별된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
‘국가’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서유럽에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개념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들이 끊임없이 분석하고 논의해 왔다.
20세기의 ‘국가’ 개념은, 정부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어떠한 식으로든 강제에 의존하게 되므로 유해하기까지 하다는 무정부주의에서, ‘국가’는 국민의 생존에 책임이 있으므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복지국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국가’의 개념이나 정의, 기능 등에 대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어쨌든 ‘국가’가 자기 국민을 적극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일 것이다.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생각하니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 판결이 떠오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일제강점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108명과 원폭 피해자 2500여 명이 “정부가 한일 간 재산 및 청구권과 관련한 분쟁을 해결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각각 외교통상부 장관을 상대로 낸 위헌확인 헌법소원에 대해 모두 위헌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1항에 의해 소멸됐는지 여부에 관한 한일 양국 간 해석상 분쟁을 협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있는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헌법적 시각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고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잘못을 지적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또 최근 대법원은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피해자 8명이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들의 상고심에서 원고들 패소로 판결한 원심판결들을 원고들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각종 배상과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건의 일부 원고들은 1999년 일본법원에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强占)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 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대법원이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우리나라에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대담한 판단을 한 것이다. 대법원은 그 밖의 쟁점에 대해서도 “구 전범기업인 구 일본제철이나 구 미쓰비시중공업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법적 지위에 있는 현재의 신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중공업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며 일본 법원과는 다른 독립적인 판단을 했다.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을 접하면서 나라의 힘이 없어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기를 겪어야 했던 당시의 우리 국민, 특히 강제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였을까 생각해본다. 그들이 느꼈을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짊어졌을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회계약론’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루소는 ‘국가’의 권위란 군주의 통치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치자의 일반의지에서 나오고, 주권은 국민 자체이며, 법이란 다름 아닌 전체 국민의 의지라고 주장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400여 년 전에 살았던 루소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도 주권에 최우선의 가치를 둔, 국민의 의지를 최대한 존중한 세기의 판결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을 보호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을 늦게나마 바로잡고,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정의를 선언한 판결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맡은 재판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하는 국가의 의무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임할 것을 다짐해 본다.
〈김성주 광주지법 민사4부 부장판사〉
20세기의 ‘국가’ 개념은, 정부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어떠한 식으로든 강제에 의존하게 되므로 유해하기까지 하다는 무정부주의에서, ‘국가’는 국민의 생존에 책임이 있으므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복지국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국가’의 개념이나 정의, 기능 등에 대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어쨌든 ‘국가’가 자기 국민을 적극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일 것이다.
또 최근 대법원은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피해자 8명이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 청구소송들의 상고심에서 원고들 패소로 판결한 원심판결들을 원고들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이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각종 배상과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건의 일부 원고들은 1999년 일본법원에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强占)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 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대법원이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우리나라에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대담한 판단을 한 것이다. 대법원은 그 밖의 쟁점에 대해서도 “구 전범기업인 구 일본제철이나 구 미쓰비시중공업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법적 지위에 있는 현재의 신일본제철이나 미쓰비시중공업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며 일본 법원과는 다른 독립적인 판단을 했다.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결을 접하면서 나라의 힘이 없어 일본제국주의의 강점기를 겪어야 했던 당시의 우리 국민, 특히 강제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였을까 생각해본다. 그들이 느꼈을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짊어졌을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회계약론’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루소는 ‘국가’의 권위란 군주의 통치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치자의 일반의지에서 나오고, 주권은 국민 자체이며, 법이란 다름 아닌 전체 국민의 의지라고 주장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400여 년 전에 살았던 루소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도 주권에 최우선의 가치를 둔, 국민의 의지를 최대한 존중한 세기의 판결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을 보호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을 늦게나마 바로잡고,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정의를 선언한 판결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맡은 재판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하는 국가의 의무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임할 것을 다짐해 본다.
〈김성주 광주지법 민사4부 부장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