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에서는 소송과정의 체험과 실연을 통해 실무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으로 형사모의재판을 하고 있다. 여기서 사법연수생들은 각자 판사, 검사, 피고인, 피해자, 증인 등의 역할을 맡고 실제와 같이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보통 연수생들은 판사, 검사 역할을 선호하고, 피해자나 피고인의 역할은 조금은 경원시하는 편인데 아무래도 범죄자의 역할을 꺼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사법연수생의 신분으로 형사모의재판에 참여했는데, 역할을 정하는 첫날 피고인 역할을 지원했었다. 판사, 검사 등은 법조인의 삶을 살면서 거칠 수도 있는 반면, 필자가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고, 그렇다면 이번 기회나마 피고인 역할을 맡아 실제는 아니지만 피고인의 지위를 이해해보고 싶었다. 실제가 아닌 모의재판이지만 재판은 진지하게 진행됐고, 모두 나름의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피고인으로 나선 필자 또한 나름의 이유로 무죄를 주장했지만, 결국 모의재판 속 피고인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간접적이지만 이 모의재판을 통해 피고인의 지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변호사가 돼 여러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서, 형사모의재판의 추억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필자는 올해 다시 피고인이 되었다. 모의재판 속 가짜 피고인이 아닌 실제 피고인이 된 것이다.

필자는 구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는 사실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기간 내에 적성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필자는 운전면허적성검사를 받으라는 통지를 받지 못해 운전면허적성검사기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즉 도로교통법 위반의 고의가 없다는 주장으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필자와 같이 적성검사기간 도과 및 운전면허 갱신기간 도과로 범칙금 또는 과태료를 내는 사람은 2006년 10월1일부터 2011년 9월31일까지만 계산하더라도 175만 명에 이른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다소 억울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칙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실제 재판으로 진행된 경우는 드물다. 유사한 판례가 없는 것을 보면 필자가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위반한 구 도로교통법은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적성검사를 받지 않은 경우, 제1종 운전면허 및 제2종 운전면허를 불문하고 과태료를 부과한다. 반면 구 도로교통법은 제1종 운전면허의 경우, 벌금을 부과하고, 제2종 운전면허의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해 합리적 이유 없이 제1종 운전면허와 제2종 운전면허를 차별했다. 그 외에도 구 도로교통법은 여러 문제점이 있어 필자는 구 도로교통법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필자는 형사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면서 변호사란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왜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준비해 간 여러 주장도 필자가 변호인이 된 다른 사건과는 달리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제1심에서 벌금 5만원의 유죄를 선고받을 때에는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필자가 그러할진대 보통의 피고인들은 심리적으로 더 위축되어 자신의 유리한 주장마저 펴지 못할 가능성이 분명하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변호인으로서 좀 더 피고인의 주장을 잘 들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피고인에게 더 유리한 주장은 없는지, 간과한 사실관계는 없는지, 법리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등등. 이번 재판은 필자에게 변호사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함을 일깨워준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