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불편한 진실’
2012년 07월 23일(월) 00:00 가가
권 나 원
“우리는 살면서 많은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알고 있던 진실이 모두 진실이 아니라고 밝혀진다면 여러분은 어떠시겠습니까?”
지상파 방송에서 유행하는 개그 프로 ‘불편한 진실’의 오프닝 멘트다. 신문이나 뉴스의 기사 제목으로도 자주 언급되는 이 ‘불편한 진실’이라는 코너는 일상에서 무심코 접하게 되는 습관적인 대화나 행동, 현상들에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내면심리의 비의도적인 표출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여줘 웃음을 준다.
필자는 검사로 재직하며 짧게는 수십 페이지에서 많게는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사건기록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데, 과거에 발생한 하나의 진실과는 반대되는 사건 관계인들의 진술을 접할 때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떠올려 보게 된다. 필자가 배당받는 형사 법률분쟁을 해결(엄밀히 말하면 ‘처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발생한 하나의 사건을 범죄의 구성요건에 들어맞는 형태로 재구성해내야 한다. 그 요건에 들어맞는 구성에 성공하면 기소를 하게 되고 흠이 발생하면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처분을 하게 된다.
사건의 관계인들도 수사기관에 출석해 이러한 과거의 사건을 기억에 의해 재구성한 진술을 하게 되는데, 그 중에 특히 ‘어떻게 했느냐’와 ‘왜 그렇게 했느냐’의 문제, 즉 행위의 동기나 경위에서는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많은 기억의 조작과 왜곡이 일어나 진실의 불편함을 가중시킨다.
간단한 ‘주폭’사건, 음주로 인한 폭력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술을 먹고 길을 가다 어깨가 부딪쳐 시비가 되며 서로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불과 몇 분 만에 끝나버린 짧은 사건이었지만 가해자나 피해자 또는 서로 싸움을 한 쌍방 가해자들이 기억하는 진실은 저마다 다르다. 대체로는 저마다 상대방에게 맞은 사실은 기억하지만, 상대방을 때린 사실은 기억해 내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한다. 싸움을 하게 된 이유나 목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욕설을 하고 시비를 걸어온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자신이 상대방을 비아냥거리거나 도발한 사실은 없다고 한다.
사건 관계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불리한 행동에 대하여는 진술하고 싶지 않거나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다. 마치 부부싸움을 할 때와 같이. 술을 마신 상태였거나 시간이 흘러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정신없이 혼란한 상태에서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흔히 한다. 그러나 자신의 유리한 경험에 대하여는 비교적 기억이 또렷하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호소하는 사건관계인을 만나게 되면, 필자는 가끔 사건 관계인들에게 “그것은 진실입니까? 아니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 아닌가요?” 질문을 하면서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한다. 본인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억에서 삭제해 버린 불편한 진실이 표출되는 현상은 없는가를 살핀다.
이러한 당사자들의 왜곡, 조작된 기억과 언급을 회피하는 불편한 진실을 걸러내고 제3자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행위를 추출해 내는 것이 사건 해결에 가장 우선적이고 필수적인 작업이다. 그런 다음에 추출된 객관적인 행위에 비춰 내심 의사를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고의·목적·이유와 같이 범죄행위인지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이 보일 때가 있고, 사건의 해결점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 단계에 이르면 어떤 결정을 내려 사건이 마무리된다.
지난해 안양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20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사기 고소사건인데 피의자와 고소인 모두 의도된 진술 왜곡이 너무 심해 부분적인 객관적 사실도 확정해 내기가 어려워 소위 장기간 방치돼 있던 사건이었다. 사건관계인들의 불편한 진실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고 나서 객관적 행위만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해 들려 주었다. 양 당사자들이 다투는 사건인데도, 소설 같은 이야기에 피의자와 고소인 모두 생각보다 큰 반발은 없었다. 당사자들은 “그런 얘기도 가능하겠네요”라고 말했다.
오늘도 필자는 어느새 사무실 캐비닛을 열어 서로 다른 진실이 숨어 있는 사건기록을 들여다본다. “하나의 진실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모두 다르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진실일 수도 있을 겁니다”라며 이해를 구해 보고자.
〈광주지방검찰청 형사2부 검사〉
지상파 방송에서 유행하는 개그 프로 ‘불편한 진실’의 오프닝 멘트다. 신문이나 뉴스의 기사 제목으로도 자주 언급되는 이 ‘불편한 진실’이라는 코너는 일상에서 무심코 접하게 되는 습관적인 대화나 행동, 현상들에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내면심리의 비의도적인 표출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여줘 웃음을 준다.
간단한 ‘주폭’사건, 음주로 인한 폭력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술을 먹고 길을 가다 어깨가 부딪쳐 시비가 되며 서로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불과 몇 분 만에 끝나버린 짧은 사건이었지만 가해자나 피해자 또는 서로 싸움을 한 쌍방 가해자들이 기억하는 진실은 저마다 다르다. 대체로는 저마다 상대방에게 맞은 사실은 기억하지만, 상대방을 때린 사실은 기억해 내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한다. 싸움을 하게 된 이유나 목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욕설을 하고 시비를 걸어온 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자신이 상대방을 비아냥거리거나 도발한 사실은 없다고 한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호소하는 사건관계인을 만나게 되면, 필자는 가끔 사건 관계인들에게 “그것은 진실입니까? 아니면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 아닌가요?” 질문을 하면서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한다. 본인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억에서 삭제해 버린 불편한 진실이 표출되는 현상은 없는가를 살핀다.
이러한 당사자들의 왜곡, 조작된 기억과 언급을 회피하는 불편한 진실을 걸러내고 제3자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객관적인 행위를 추출해 내는 것이 사건 해결에 가장 우선적이고 필수적인 작업이다. 그런 다음에 추출된 객관적인 행위에 비춰 내심 의사를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고의·목적·이유와 같이 범죄행위인지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이 보일 때가 있고, 사건의 해결점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 단계에 이르면 어떤 결정을 내려 사건이 마무리된다.
지난해 안양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20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사기 고소사건인데 피의자와 고소인 모두 의도된 진술 왜곡이 너무 심해 부분적인 객관적 사실도 확정해 내기가 어려워 소위 장기간 방치돼 있던 사건이었다. 사건관계인들의 불편한 진실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고 나서 객관적 행위만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해 들려 주었다. 양 당사자들이 다투는 사건인데도, 소설 같은 이야기에 피의자와 고소인 모두 생각보다 큰 반발은 없었다. 당사자들은 “그런 얘기도 가능하겠네요”라고 말했다.
오늘도 필자는 어느새 사무실 캐비닛을 열어 서로 다른 진실이 숨어 있는 사건기록을 들여다본다. “하나의 진실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모두 다르고 누군가에게는 다른 진실일 수도 있을 겁니다”라며 이해를 구해 보고자.
〈광주지방검찰청 형사2부 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