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몇몇 단체들이 주재하는 형사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그들이 믿는 유일신이었고, 죄목은 왜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막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재판부는 그들이 믿는 유일신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일부 신도들은 감히 신에 대해 죄를 따졌다며,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펄쩍뛰었다.

며칠 전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전격적이고 이례적으로 법정구속됐다. 김 회장 측 변호인은 그룹 내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일은 전혀 몰랐고, 자신의 부하직원들이 주도해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이 압수한 문서에 따르면 한화그룹 본부 조직에서는 김승연 회장을 CM(체어맨)이라고 부르는데, CM은 신의 경지이고 절대적인 충성의 대상이며, 본부조직은 CM의 보좌 기구에 불과하다고 적혀 있음에 비춰 한화그룹 전체가 김 회장 개인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보고 및 지휘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며 변호인 측 주장을 일축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 재계 13위의 대기업 총수인 김승연 회장의 공적이나 앞으로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양형사유로 고려하지 않은 재판부의 판결은 잘못된 것이라는 평가부터 죄를 지었으면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평가까지 의견들이 분분하다.

김 회장의 형량이 무겁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그를 신으로 추앙한 그룹 내부의 의견들을 종합하여 보면 재판부는 ‘신’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한 것이고, 더 나아가 좁디좁은 감방에 구속시켜 버린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신’을 구속한, 사람으로 구성된 재판부를 불경스럽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신은 구속됐고, 신을 추앙하던 사람들은 모두 혼란에 빠졌다. 친기업적인 언론매체들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앞다퉈 보도할 것이고, 필자에게는 아들 복수까지 친히 나설 정도로 건강했던 김 회장이 또다시 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할 것도 어느 정도는 예상되는 일이다.

필자는 그룹 총수들에게 면죄부처럼 선고됐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판결을 보지 않아서 좋다. 물론 필자가 변호를 맡아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면 그리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사람들 변호를 맡을 생각도 없다.

김승연 회장이 떠들썩하게 재판을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구속된 것도 처음이 아니고, 그래서 이쯤 되면 “나는 신의 경지이니, 법이고 뭐고 필요 없다”는 취지가 아닌가 의심이 된다.

지난해 형사 변호를 맡긴 구속된 피고인이 “변호사님 초범의 경우 구속되는 경우가 적다면서요?”라고 물어 ‘그렇다’고 웃으며 대답해 준 적이 있었는데, 김승연 회장은 초범도 아니니 횡령 금액이나 죄질, 전과관계 등을 고려할 때 매우 적정한 판결이거나 또는 조금은 가벼운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언론에 김승연 회장 측 변호인의 이름까지 보도되고 있는데, 그런 사람 변호했다고 변호사들까지 비난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우리나라 모든 형사 피고인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헌법에 쓰여 있으며 변호사란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을 주업무로 하는 하나의 직업에 불과하다.

또 네티즌들 사이에 세상에 가장 힘든 직업이 한화이글스 응원단장이라는 말이 나도는데, 제발 한화이글스 응원단장이든 한화 선수들이든 김 회장의 구속과는 상관없이 모두 힘을 내서 마지막까지 잘해주길 바란다. 필자는 KIA 팬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프로야구팬이고, 프로야구 판도가 재미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