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를 보다가
2012년 08월 27일(월) 00:00 가가
배 진 호
유난히도 무더웠던, 아니 아직도 열기가 다 가시지 않은 올 여름. 그래도 올해는 하계 올림픽이 열린 덕에 보름간이나마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메달을 떠나 모든 선수들의 땀방울이 참으로 소중했지만, 축구를 즐겨하고 즐겨보는 필자는 아직도 대표팀이 4강에 올라 동메달을 목에 건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저번 주말 때마침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제2의 고향팀인 광주FC의 프로축구경기가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 가족 모두가 오랜만에 축구장을 찾았다. 시민구단으로서 열악한 재정과 얇은 선수층이라는 한계 때문에 의욕만큼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날은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경기장에 들어와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다.
경기는 상당히 팽팽히 진행됐지만, 다소 과감한 심판의 페널티킥 판정으로 실점을 한 후 조직력이 흔들리면서 결국 2-1로 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잘했다고 선수들에게 박수 쳐 주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는데, 뒤에 걸어오던 아저씨 두 명이 큰 소리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었다. 상대팀에는 석연치 않게 페널티킥을 준 반면 광주팀에게는 여러 차례 혼전 상황에서도 페널티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불만의 요지였다. 필자는 충분히 재량 범위 내에서 판정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들의 대화는 계속 진행돼 심판의 시력에 큰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상대편 감독과 친할 것이라는 억측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장과 법원이라는 장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러한 유형의 대화는 판사인 필자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필자뿐만 아니라 법원의 모든 법관들은 하나의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제출한 수십, 수백 장의 증거자료를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필요한 참고서적이나 판례를 끙끙대면서 찾아본다. 치열한 재판부 합의 절차를 거친 후 실제 판결문을 작성함에는 맞춤법 교재까지 참고하는 등등 참으로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마무리되고 각자 승패가 갈리게 되면, 패소의 결과를 받은 쪽은 많은 불만을 쏟아내기 일쑤다. 이러한 반응이 좀 더 격해지게 되면 담당재판부에 대한 불신에까지 이르게 된다.
판사도 인간인지라 당연히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비난을 들으면 상심하게 된다. 삼라만상을 다 깨우치지 못한 한갓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잘잘못을 판단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항상 감내해야 할 숙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소송당사자나 법관이나 모두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방안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제도적 개선책일 것이다. 법원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매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법률서비스조차 받기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소송구조 제도나 국선변호인 제도를 운영해 정당한 권리가 있음에도 법적 지식 부족으로 억울한 일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고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또 올 상반기에는 법정을 찾는 실제 사건당사자들이나 소송대리인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 담당 재판장의 재판 진행의 공정성, 친절도와 같은 여러 사항을 물었고, 각 조사 결과를 해당 재판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러한 제도보다는 내면의 진심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진심은 사건당사자의 괴로움에 대해 단순한 동정이 아닌 따뜻한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온화함, 법정에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속에 꾹 눌러 담았던 말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여유로움, 어느 누구에게나 편견을 갖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정의로움과 같은 덕목들로 나타날 것이다.
이와 관련 필자도 상당히 부끄러운 일화가 있다. 얼마 전 아내가 도대체 내 남편은 어떻게 재판을 하는가 궁금한 나머지 법정에 찾아와 직접 방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갔더니 아내가 대뜸 “오늘 사무실에서 무슨 일 있었어? 법정에서 얼굴이 굳어있던데.”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필자는 방청석에 아는 얼굴이 보고 있어서 긴장했나보다 하면서 둘러대기는 했지만, 그날 필자의 얼굴에서는 정의로움은커녕 온화함이나 여유로움조차 묻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법정을 찾았던 몇몇 당사자들은 나중에 판결 결과를 보고서 필자나 재판부에 불만을 토로했으리라.
각종 소송에는 필연적으로 승패가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합리적인 조정안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그러한 와중에 법관이 단지 경기를 진행하고 승패를 선언하는 심판의 지위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법정을 거쳐 간 모든 당사자들의 삶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조력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광주지법 회생53단독 판사〉
저번 주말 때마침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제2의 고향팀인 광주FC의 프로축구경기가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 가족 모두가 오랜만에 축구장을 찾았다. 시민구단으로서 열악한 재정과 얇은 선수층이라는 한계 때문에 의욕만큼 좋은 성적은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날은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경기장에 들어와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었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제도적 개선책일 것이다. 법원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매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법률서비스조차 받기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소송구조 제도나 국선변호인 제도를 운영해 정당한 권리가 있음에도 법적 지식 부족으로 억울한 일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고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또 올 상반기에는 법정을 찾는 실제 사건당사자들이나 소송대리인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 담당 재판장의 재판 진행의 공정성, 친절도와 같은 여러 사항을 물었고, 각 조사 결과를 해당 재판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러한 제도보다는 내면의 진심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진심은 사건당사자의 괴로움에 대해 단순한 동정이 아닌 따뜻한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온화함, 법정에 찾아온 사람들의 마음속에 꾹 눌러 담았던 말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여유로움, 어느 누구에게나 편견을 갖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정의로움과 같은 덕목들로 나타날 것이다.
이와 관련 필자도 상당히 부끄러운 일화가 있다. 얼마 전 아내가 도대체 내 남편은 어떻게 재판을 하는가 궁금한 나머지 법정에 찾아와 직접 방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갔더니 아내가 대뜸 “오늘 사무실에서 무슨 일 있었어? 법정에서 얼굴이 굳어있던데.”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필자는 방청석에 아는 얼굴이 보고 있어서 긴장했나보다 하면서 둘러대기는 했지만, 그날 필자의 얼굴에서는 정의로움은커녕 온화함이나 여유로움조차 묻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법정을 찾았던 몇몇 당사자들은 나중에 판결 결과를 보고서 필자나 재판부에 불만을 토로했으리라.
각종 소송에는 필연적으로 승패가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합리적인 조정안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그러한 와중에 법관이 단지 경기를 진행하고 승패를 선언하는 심판의 지위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법정을 거쳐 간 모든 당사자들의 삶에 위안을 줄 수 있는 조력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광주지법 회생53단독 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