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유수의 방송사와 금융기관이 ‘트로이 목마’식의 악성코드에 감염돼 전산마비의 진통을 겪었다. ‘트로이목마’로 불리는 이 악성코드는 e메일이나 파일로 위장해 해당 PC에 침입한 후, 오랜 기간 잠복해 있다 어느 순간 해당 PC의 하드디스크를 파괴시킨다.

만약 우리 몸속에도 ‘트로이목마’와 같은 바이러스가 잠복하고 있다면 어떨까? 대표적인 예가 만성질환 중 하나인 B형간염이다. 침묵의 장기라고 불리는 간의 특성상 B형간염은 우리 몸속의 간세포가 손상을 입어도 특별한 증상이나 통증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필자가 진료한 한 환자의 사례만 봐도 B형간염의 조용한 공격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다. 이 환자는 몇 달째 지속되는 만성피로 때문에 병원을 방문했다. 수직감염으로 인한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이긴 했지만 아직 나이도 젊고 약간의 피로감 외에는 별문제가 없던 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검사 결과, B형간염 바이러스로 인한 간 손상이 상당히 진행돼 간경변증 초기 진단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검사 결과에 환자는 꽤나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이처럼 B형간염은 병이 어느 정도 악화되기 전까지 경미한 증상만 나타나 환자들이 이를 질환으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오랜 기간 방치해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B형간염은 인종에 따라 감염 바이러스 유전자형도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A에서 H까지 8가지 종류가 있다. 특히 국내 환자의 98% 이상이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 C형은 간경변증으로의 진행이 빠르고, 간암 발생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간질환으로 사망할 위험도가 정상인에 비해 30∼100배 높고, 실제로 간암환자의 70∼80%가 B형간염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다. 만성 B형간염 환자가 간경변증으로 진행되는 비율은 5년, 10년, 20년이 경과할 때마다 각각 9%, 23%, 48%로 알려져 있으며, 간경변증 환자의 간암발생률은 5년, 20년이 경과할 때 각각 2.7%, 42%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보고된 바 있다.

B형간염 바이러스가 일단 우리 몸에 침투하면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정기검진과 올바른 치료법으로 꾸준히 관리하면 간경변증, 간암으로 옮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B형간염으로 인한 심각한 합병증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는 간에서 특별한 기별이 안 와도 최소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 미리미리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B형간염 바이러스가 활발히 활동하지 않는 잠복기에서 체내 B형간염 바이러스 증식이 급격히 활발해지는 위험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치료시기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한간학회에서는 간효소수치, 바이러스활성화수치, 간초음파 검사 세 가지를 병행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만성 B형간염은 평생관리가 필요한 만큼 처음부터 내성 발현율이 낮고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좋으며, 추가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지 않은 약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도 없는 B형간염을 매번 검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트로이목마 악성코드처럼 잠복기를 거쳐 우리 몸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킬 수 있음을 명심하자. 바이러스 증식으로 인해 간에 기별이 오는 순간,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간이 파괴된 뒤일 수도 있다는 점을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

/홍건영 광주기독병원 소화기내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