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그린솔, 김아침햇살, 김바른, 오하은 내가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의 이름이다. 듣기에 생소하지만 이름을 듣는 순간, 그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드러나는 이름들이다. 얼마 전 지인들이 카페를 시작하겠다며 카페 이름을 무엇으로 했으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또 어떤 선생님은 둘째딸을 낳았다 해서 축하전화를 했더니 무슨 이름으로 해야 할지 몰라 작명소를 찾을 예정이란다. 이름을 짓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인 듯하다. 이런 면에서 이름은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보다는 먼 시간을 그리고 미래의 희망을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을 짓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과도 같은 것 같다.

한편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다. 인지주의 심리학자 피아제에 따르면 우리들은 구체적 표상을 통해 대상을 기억하게 된다. ‘사과’하면 떠오르는 어떤 상이나 의미가 있을 텐데 그것을 머릿속으로 그려 대상을 기억한다. 예를 들어 내가 ‘김바른’이나 ‘박그린솔’을 떠올리는 순간 내가 ‘바른아’ 혹은 ‘솔아’라고 불렀던 그 학생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오르고 그 아이의 웃는 모습이나 엉뚱한 행동이 생각난다. 얼마 전에 20여 년 전 군복무를 하던 당시에 대대장이셨던 분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은 4성 장군으로 군을 지휘하시는 사령관이시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부하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식사를 하는 도중에 20년 전 만났던 내 이야기를 했단다. 그리고 그 사령관의 참모 중 한 분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내가 신부가 되었고 지금은 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그 사령관의 기억은 이렇다. 내가 이등병 시절에 대대장이셨던 그 사령관은 그 부대에서 임기를 마치고 소임 이동을 위해 부대를 시찰하던 중 신학생이었던 내게 와서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해주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본인은 개신교 신자지만 인제 자대에 배치받은 이등병 얼치기 신학생에게 기도를 부탁했단다. 그 일로 그분의 기억 속의 내 이름은 기도하던 모습과 함께 떠올랐을 것이다.

이름이 남들과 달라 어렸을 적부터 누구든 내 이름을 한번 말하면 기억하였다. 그런 이유로 모난 짓 못하고 학창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이름 탓에 모범생이 되었다. 흔치않은 이름 때문에 이름이 불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저 선생님은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을지 불안해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부터 ‘조발래’ ‘조발개’ 등 혹여 오자라 생각하며 이름을 세자로 고쳐 부르시는 분도 있었다. 때로는 외국사람이 아닌지 하며 이름 부르기를 걱정스러워 하시는 분도 있었다. 희한한 이름 탓에 아버지의 직업이 ‘국어교사’로 단정지어지기도 했다. 혹은 이름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아마도 이름에 대한 관심이 나를 기억하는 ‘구체적 표상’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천주교에서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세례명’ 혹은 ‘본명’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현 교황은 자신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라고 정하면서 자신이 어떤 교황으로 살지를 스스로 정하였다. 천주교인들에게 ‘본명’ 혹은 ‘세례명’이란 그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한 것이다. 그 이름이 예뻐서든 기억하기 쉬어서든 혹은 그 이름의 성인을 닮고 싶어서든 천주교인에게 ‘본명’은 자신을 교회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기억하게 하는 또 다른 구체적 표상이며 기도이다. 많은 신자들은 세례를 앞두고 ‘세례명’이 무엇이 좋을지 물어본다. 또 우연히 만난 신자들은 신부인 나에게 자신을 ‘요셉’, ‘바오로’, ‘안나‘, ‘소피아’라며 소개한다. 이는 같은 신자라는 연대이기도 하고 자기를 기억하여 기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이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름은 그에 대한 기도이고, 관심이며 기억이기 때문이다.

/조발그니 목포 가톨릭대 교수·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