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사회 구조의 한 영역으로 존재하며, 사회 구조를 규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적 조건이다. 이런 관계성에서 보면 교육이 경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안정적 직업을 위한 방편이 되는 것도 일견 이해된다. 개인의 적성과 능력 발현을 위한 교육과 미래사회의 직업에 대한 이해와 준비를 병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영학의 구루(guru, 권위자)’로 불리는 톰 피터스(Tom Peters)는 ‘미래에는 모든 것의 본질 자체가 뒤엉킨 혼돈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발전으로 인한 사회의 대변화가 기존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혼돈은 파괴를 부르지만, 그 파괴는 새로운 생성의 동인(動因)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산업간 구분이 불명확한 ‘블러(Blur)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 프로슈머(Prosumer) 현상을 들 수 있다. 생산자인 프로듀서(Producer)와 소비자인 컨슈머(Consumer)의 합성인 프로슈머는 제품의 구매자인 동시에 생산자다. 이들은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판매자와 구매자의 역학 관계를 뒤바꿔놓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도 다방면에서 감각과 경험을 쌓은 T자형 인재, 전구형 인재들이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로서의 깊이(?)와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갖춘 T자형 인재는 한 방향만 비추는 레이저빔형과 대비되며, 산업간 융합이 가속화되는 현대사회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상도 다르지 않아, 질서에 대한 재해석과 창조 능력을 보다 강조하게 된다. 모르는 것은 가르치면 되지만, 과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탐구력과 실행력은 오랜 배움과 경험 속에서 숙달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 구글 등 혼돈의 현대사회를 선도하는 기업의 원동력이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개방형 혁신)’이라는 점도 중요한 시사점이 된다.

탐구력과 실행력은 ‘창의적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키워질 수 있다. 물론 학습 의지 부족이나 태만에서 오는 실수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비록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지라도 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과감한 시도를 조장하고, 이로 인한 리스크를 허용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유대인 학부모들이 ‘학교에 가서 질문을 많이 하라’고 가르칠 때, 우리나라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질문은 학습 과제에 대해 어떻게(how)가 아니고 왜(why)라고 접근함으로써 기존 루틴에 대한 재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정답에 대한 이해와 적응, 순응을 강조하는 우리와 달리 관행에 대한 의문을 중시하는 유대인의 교육은 창조적 파괴를 요구하는 미래사회의 추세와도 부응한다.

얼마 전에는 국내 학원들이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를 유출해 한국 내 시험이 취소되는 사태도 있었다. 시험 지역의 시차를 악용한 문제 빼돌리기도 문제지만, 출제 경향을 미리 연습시키는 선행(先行) 학습의 논리, 나아가 체제 순응형 인재 키우기가 횡행하는 우리의 자화상이 공개된 듯하여 씁쓸하다.

수이불실(秀而不實)이란 말이 있다. 이삭이 올라와 꽃은 피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뜻이다. 좋은 성적으로 국내 명문대나 미국 대학에 진학한들, 미래사회에 필요한 인재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김창균 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