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 지나가고 이제는 초여름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것이 느껴진다. 산속에는 녹음방초가 더욱 짙어가고 “끼익∼끼익” 울던 고라니들의 번식기도 끝나가는 것 같다.

지난해 이맘때쯤 군위 인각사 주지 시절의 일이다. 해마다 인각사에서는 삼국유사 문화축전을 여는데, 문화축전일 관계로 대구에 나갔다 와보니 절에서 키우던 삽사리란 놈이 일을 내고야 말았다. 삽사리는 제집에서는 배변을 하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줄을 풀어주면 수풀 속에서 일을 보았다.

내가 대구에 나간 사이 공양주 보살님이 일을 보라고 줄을 풀어준 모양이었다. 그런데 “왕왕” 짖던 삽사리가 줄을 풀자마자 절 해우소 뒤로 쏜살같이 가더란다. 이때 다리를 다친 고라니가 삽사리에게 몰려 절 앞 논으로 몸을 피했다. 사냥 본능이 발동된 삽사리는 고라니의 목을 물고, 공양주 보살님이 아무리 소리쳐도 놓지 않았다. 이때 근처를 지나던 사하촌 마을사람이 끈으로 고라니의 목을 매어 절 앞 가로수 지지대에 묶었다. 내가 절에 들어온 때가 그때였다. 삽사리는 여전히 흥분하고 있었다.

예부터 절 아랫마을(사하촌) 주민들과 절 사이는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절은 경작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경작지를 지키려는 절과 그것을 탐내는 사하촌 주민들과는 소소한 마찰이 그치지 않았다.

당시 인각사 아랫마을 주민들 사이에 절 소유지 경작권을 놓고 반목이 심하였던 터라 주민들에게는 될 수 있으면 공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할 수 있으면 절 아랫마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지역발전문제 등이 제기되면 해당 관청에 여러 가지 청원을 넣기도 했다.

어쨌든 공양주 보살님의 이야기를 듣고 묶인 고라니를 보러 갔다. 고라니의 왼 뒷발에 뼈가 튀어나왔고, 도망치려고 솟구치다가 밧줄에 결박되어 땅에 ‘뚝’ 떨어졌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그런데 고라니를 붙잡은 마을사람이 허리가 아파 고라니를 고아 먹는다고 했다. 그 무자비한 말에 화가 솟구치었다.

“허가받지 않고 야생동물을 포획하면 불법입니다. 처벌받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냉정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마을사람은 개가 고라니를 잡았다고, 불법을 저지른 것은 개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부소리 않고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경찰이 오고, 면사무소 담당 공무원이 오고, 어쨌든 고라니는 구호를 받았다.

그러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왜 그때 마음속에 화를 내고 그 마을 사람에게 불법 운운하며 딱딱 을러댔는지…. 고라니를 잡아먹는다는 말에 화를 내기 보다는 자신을 한번 더 추슬러 “고라니 다리를 치료받게 해 살려줍시다”라고 그 사람을 달래고 설득했더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사바세계를 견디다 보면 그 누군들 한번쯤 마음속에 독기를 품지 않으련 만은 그 독기를 뿜어내기보다는 마음속에 한번 더 추슬러 자비와 사랑으로 변환하여 “같은 생명을 지닌 저 가여운 짐승을 살려줍시다”가 더 좋지 않았을까?

마음속에 불현듯 지피는 성깔을 한번쯤 눅이며 같이 숨 쉬는 생명들을 돌아 볼 여유가 필요할 게다.

/도권 보각사 주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