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취업포털 사이트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들은 상사에게 “일이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라는 거짓말을,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자네만 믿네”라는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듣기에 따라 상사에게 걱정끼치지 않으려는 선의의 거짓말로 느낄 수도 있고, 부하직원을 독려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은 채 쓰다 보면, 곧 본심이 탄로나기 쉬운 말이다.

어렵게 승진해서 은행지점에 근무하는 친구는 그 거짓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각종 신상품이며 목표가 지점에 주어지면 그 목표를 팀별, 개인별로 나눠주고, 평가하고, 실적 나쁜 직원 대책보고 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괴롭고 힘들기 때문이란다. 상대적으로 불이익 받았다 생각되면 은근한 항의가 들어오고 부하직원들끼리 어울려 나가는 걸 보면 자신을 욕하는 것만 같아 괴롭기만 한데, “자네를 믿는다”는 뻔한 말이라도 해줘야 상대도 자신도 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그 말은 한두 달이면 유효기간이 다 될 것이고, 그들의 관계는 입에 발린 소리만 오가는 삭막한 관계로만 남기 십상일 것이다.

열국지 초장왕편에는 부하를 아껴 목숨을 건진 장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쟁이 끝나 장왕이 부하들을 격려하기 위해 연회을 베풀었다. 밤이 되자 사방에 많은 촛불을 켜고, 주흥이 오르자 장왕은 총애하는 애첩 허희를 시켜 장수들에게 술을 한 잔씩 따르게 했다. 절세미녀가 술을 따르자 장수들이 모두 일어나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술렁거렸다. 반쯤 돌았을 때 갑자기 큰 바람이 불고 촛불들이 모두 꺼져 암흑천지가 되었다. 그때 누군가 슬며시 허희를 끌어안았다. 불의의 성폭행을 당한 애첩은 왕에게 고한다. 어느 발칙한 놈이 자신을 껴안기에 갓끈을 하나 끊었으니 얼른 불을 켜 사실을 밝히라고 말이다. 이에 장왕은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 격식을 벗고 모든 장수들은 갓끈을 하나씩 끊고 마시라”고 명령한다.

수년 후 진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장왕은 진나라에 사로잡힐 위기에 처한다. 그때 한 장수가 목숨을 돌보지 않고 장왕을 구하고는 크게 승기를 잡았다. 왕이 후한 상을 주려 하자 그 장수는 “이미 큰 상을 받았는데 염치없이 어찌 또 받겠습니까?”하며 몇 년 전 갓끈의 죄인임을 밝혔다.

초나라는 계속 승승장구했고 장왕은 춘추시대의 5대 강자라 할 춘추오패의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친다. ‘절영지회(絶纓之會)’의 유래이다. ‘갓끈을 끊고 격의 없이 즐기는 자리’가 남에게 너그러운 덕(德)을 베풀다는 의미가 된 것이다.

계산은 명확하고 시시비비를 잘 가려야 디지털시대를 사는 요령이겠지만 엄격히 따지고 분별하기보다 때로는 허물을 덮고 다독어 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이자를 쳐서 갚으면 잊어버릴 수 있지만, 나를 인정해주는 상사의 보살핌과 배려는 불섶에라도 뛰어들게 할 만큼 마음을 움직인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지 않던가.

/옥영석 2005년 7월 수상자·농협중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