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WHO가 글로벌 헬스옵저버토리 조사를 통해 발표한 ‘범죄 종류별 국가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강도, 강간, 마약, 납치, 폭력 등 범죄는 5위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대단히 씁쓸한 결과도 있었다. 사기와 횡령에서는 각각 1, 2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와 있었던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이것은 곧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회이기도 하지만, 또한 거짓말을 부추기고 있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라인하르트는 그의 저서 ‘거짓말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하루에도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먼저 거짓말 횟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것들을 거짓말의 범주에 넣느냐의 분분한 의견이 있겠지만, 악의적인 거짓말이든 선의적인 거짓말이든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일상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인사말도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과연 진심으로 ‘안녕(安寧)’을 바라며 묻는 말이었던가? “네”라고 하는 대답 또한 실상은 그냥 상투적으로 내뱉은 말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매일 ‘거짓말하는 사회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후르시초프는 “정치인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는데, 선거 때마다 남발하는 정치인들의 ‘공약(空約)’을 비꼬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난 대선 때 후보들이 많은 공약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공약이 이루어질 거라 믿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총리를 비롯한 장관, 고위공직자들은 인사청문회에서 불리한 질문에는 한결같이 “모른다” 아니면 “기억이 없다”로 일관했다. 그렇게 기억력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자리까지 올라왔으며, 그렇게 ‘머리 나쁜’ 사람들을 그렇게 높고, 중요한 자리에 앉히려고 하는 임명권자의 의도를 도무지 모르겠다. 차라리 “잘못했다. 용서를 빈다”라는 사과 한마디만 해도 속이 끓지는 않으련만…. 공자는 “잘못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라고 했는데, 우리 모두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경구이다.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이젠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이 아닌 몹시 나쁜 거짓말을 의식(죄의식)도 하지 않고 한다. 이 사회의 고질병은 ‘허상(虛想)’과 ‘허세(虛勢)’와 ‘허수(虛數)’라고 진단했던 어느 목사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거품이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런 거품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오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어느 판사가 한 말이다. “재판은 거짓말과의 싸움”이라고.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위증죄가 16배, 무고죄가 39배, 사기죄가 26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당 사건 수로 보면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무려 50배 내지 100배 가까이 거짓말을 많이 하는 셈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쉽게 거짓말을 하고 거짓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거짓말은 자기 정체성을 해치고, 사회의 신뢰관계를 좀 먹고, 거짓말하는 사회(나라)는 결국 모래 위에 집짓기와 같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람이 한 번 불면 그대로 무너지고 만다.

우리는 ‘거짓은 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던 시대는 이제 종식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정직은 국가 신용도, 나라의 존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대에 정직함을 물려주는 선조가 되기를 바란다. 거짓으로 세워진 것들은 쉽게 무너지고 곧 드러나게 되어 있다.

/김재영 광주성안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