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를 칠판에 쓰면 문과 학생은 ‘흙 토’로 읽고, 이과 학생은 ‘플러스마이너스’로 읽는다고 한다. ‘염소’에서 동물을 떠올리면 문과, 화학기호 ‘Cl(Chlorine)’이 연상되면 이과 성향이라고도 한다. “얼음이 녹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봄이 온다”라고 대답하면 문과이고, “물이 된다”고 답하면 이과라고 한다. 이렇게 양분된 성향이 선천적인 것인지, 나아가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초기에 문과(인문사회계열) 또는 이과(자연과학계열)로 미래 직업군을 가르고, 어느 한 쪽에 맞춰 대입 수능을 준비하게 된다. 물론 교차지원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선택의 순간 다른 쪽 학문에 대해서는 담을 쌓게 된다. 현행 교육과정상에는 구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입 수능 및 내신과 무관한 교과는 응당 관심 밖일 수밖에 없다.

영화 ‘은교’의 서지우는 문학에 관심이 많은 무기공학과 학생이었지만, “(공대생이) 별이 다 똑같은 별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반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나 ‘뇌’가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의 융합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둘의 차이는 타고난 능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교육 제도의 차이에서 온 소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만 있다는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사실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 문물을 신속히 받아들이기 위해 서구 유람단을 두 팀으로 나눈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서 단시간에 세계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게 되었고, 우리나라도 후발 주자로서 역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최초 개척자(first mover) 전략이 중요한 시점이다. 애플과 스마트폰 특허를 놓고 심각하게 대립했던 한 기업이 인문학도를 채용해 SW엔지니어로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SCSA)을 시작했다. 2017년까지 4만명 이상의 초·중·고 학생을 교육하겠다는 ‘주니어 SW아카데미’도 문을 열었다.

정부에서도 지난달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창의 인재 육성방안’을 발표하였다. 창조경제란 자본과 단순 노동을 떠나 인간의 창의성을 활용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이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사람’에 있다. 그래서 꿈과 끼, 융합과 전문, 도전, 글로벌, 평생학습 역량이 발현된 인재를 창의인 재로 정의하고, ‘다빈치프로젝트를 통한 무한상상실 운영’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27일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 방안’을 발표하였다. 이 중 관심이 가는 대목은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문·이과를 통합하는 방안이다. 교육부는 문과와 이과를 분리하는 현행안, 문·이과 일부 융합안, 문·이과 완전 융합안을 놓고 10월말까지 공청회 등을 통해 확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입제도가 교육의 블랙홀이라는 말이 있다. 대입 제도의 변화가 초·중·고교 교육과정, 사교육 시장, 학생 진로의 방향성 등을 실질적으로 주도한다. 스티븐 잡스는 “애플은 기술과 인문의 교차점에 있다.”고 했다. 문·이과 구분 폐지가 학생들의 학습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세계적 추세가 융·복합 인재 양성이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