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수많은 죽음을 경험한 필자이지만 그중에서도 교통사고, 특히 보행자 사고는 그야말로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해 이러한 죽음은 단지 개인의 죽음에만 그치지 않고 은연중에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의식마저도 좀먹고 있다고 느껴왔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제시됐고, 요즘 광주시에서 벌이고 있는 주간 전조등 켜기 생활화 운동도 방어운전의 일종이다. 대낮일지라도 전조등을 켜면 상대방 운전자의 주목을 유도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방어운전이란 사고의 발생 가능성을 예견해 운전함으로써 어떤 돌발 상황이나 조건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방어진료는 어떤가? 사전적 의미를 보니, 의료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시행하는 치료나 진료라고 나온다. 의외의 설명이 아닐 수 없다. 방어운전의 경우처럼, 원치 않는 사고의 발생 가능성을 예견해 진료함으로써 어떤 돌발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나쁜 결과의 발생을 미리 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의료현장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의료인은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발생한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기가 힘들다. 건강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에 항상 최상의 결과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치의 차이가 늘 갈등을 만들어내고, 그 갈등은 그대로 분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수년 전의 교통사고로 사지마비에 빠진 환자가 있었다. 엉치뼈 근방에 커다란 욕창이 발생해 있었고, 온갖 방법으로 치유를 시도했지만 이미 상황은 악화의 길로 들어섰는지 욕창은 자꾸만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주치의는 위험부담을 무릅쓰고라도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큰 병원에 수술을 의뢰했으나, 대학병원에서는 환자의 전신상태에 비추어 수술이 가능하지 않다며 환자를 돌려보냈다.

사지마비상태로 수년을 버텨왔으니 가족은 물론 의료진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역으로 그 긴 시간을 버텨온 데에는 가족들의 애타는 바람과 의료진의 헌신적인 진료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위험을 감수하고 욕창을 도려내는 수술을 감행할 것인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그냥 기다릴 것인가. 주치의는 수술을 선택했다. 성공한다면 몇 개월이라도 더 삶을 연장할 수 있겠지만 결과가 두려워서 포기한다면 얼마 못 가서 사망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환자는 수술대 올랐고, 결과는 살아서 수술대를 내려오지 못했다. 유족의 불만 제기로 사건은 의료분쟁화했고 사인규명이 필요해졌다. 부검 결과, 전신 장기에 만성적인 염증이 보였고, 장기들이 이미 다양한 손상을 입고 있는 상태라서 수술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수술의 가능성에 대한 의학적 판단은 결코 쉽지 않다. 의학적 판단의 수준은 대학병원이 더 높았을지 몰라도, 적어도 환자의 쾌유를 바라는 애정 어린 마음은 규모는 작지만 수년 동안이나 환자를 돌보아 왔던 그 병원이 더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방어진료의 관점에서 주치의는 종교인 등 사회복지팀이 동참한 가운데 가족에게 수술의 위험성과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모두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결과에 대한 책임 부담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방어진료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의료인에게 더 많은 방어진료를 요청해야 하고, 아울러 그들을 방어(?)하기 위한 보험제도의 정착도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