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방학 중엔 인터넷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었다. 방학기간엔 초등학생들의 인터넷 사용이 늘고 그만큼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안하무인격으로 공격하던 주인공이 알고 봤더니 초등학생이었다는 경험담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상대방을 공격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너 초딩이지?’였다. 주로 무개념으로 비속어를 남발하는 상대를 겨냥해서 하는 말이다.

인터넷이 공론장 역할을 하여 새로운 여론을 주도하기도 했지만 상대를 저급하게 공격하는 악플러에 의한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테러 수준의 댓글 공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받았는가. 댓글을 통해 벌어지고 있는 공방전은 정보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몇 년 전부터 유독 호남 비하 글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져서 의구심을 가졌었다. 지역감정이 많이 해소됐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상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였기 때문이었다. 지역갈등과 이념문제가 겹치고 얽혀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글들이 인터넷상에 횡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을 비롯한 일부층의 일탈된 행동인 줄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여론을 조작하려는 움직임에 국가기관이 관련돼 있었다. ‘국정원 댓글녀’ 사건 이후, 관련 속보를 접할수록 놀라움은 배가된다. 악성 댓글로 여론을 호도하는 일을 국가기관이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근 검색 사이트에 ‘일베’를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로 ‘국정원’이 자동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와 묶여 있다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국정원이 일베와 관련해서 암약해왔던 일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좌익효수’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보도에 따르면, ‘좌익효수’는 2011년 1월 15일부터 지난해 11월 28일까지 인터넷 게시판에 3000여 개의 댓글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그 내용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들이다. “홍어 종자 절라디언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아따 전장군께서 확 밀어버리셨어야 하는디 아따” 등 호남, 여성 비하글과 특정인의 공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글을 작성한 자가 일베층인 것으로 생각했지 국정원 직원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좌익효수’가 검찰에 고발되자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보도자료를 냈던 국정원이 검찰 조사결과 국정원 직원으로 밝혀지자 개인적인 활동이었다고 발뺌을 했다. ‘국정원 댓글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뗐으나 수사를 통해 사실이 드러나자 국정원은 인터넷상의 종북주의자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북심리전 활동을 위해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받는 국가공무원이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해온 사건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악성 댓글로 특정 지역을 비하하다니,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