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로부터 단풍 물결이 내려오려 한다. 산천이 팔레트로 물드는 풍경이 펼쳐지게 된다. 다들 이 드라마 같은 장관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호호락락(好好樂樂)하며 산으로, 산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낙엽성 나무는 겨울철을 나기 위해서 나뭇잎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월동하기 위한 영양분을 부지런히 비축한 뒤에 몸을 가볍게 비우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잎을 떨어뜨리고자 잎자루 끝에 잎이 떨어질 수 있는 장치인 떨켜가 생겨 엽록소에 영양이 공급되지 않게 된다. 이에 녹색의 엽록소가 파괴되므로 감춰져 있던 잎 속의 다양한 색소들이 드러나게 된다. 울긋불긋한 색깔이 드러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처럼 단풍은 나무가 월동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기는 부산물이다.

이에 대해 진화생물학자인 윌리엄 해밀턴은 자신의 연구실 앞 단풍을 오랜 기간 관찰해 새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황홀하면서도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단풍빛깔은 해충들에게 보내는 ‘경계신호’라는 것이다. 나무가 자신의 경계 태세가 얼마나 철저한 지 알려주는 신호가 바로 가을 단풍이다.

“내가 이렇게 찬란한 빛깔의 색소를 만들 수 있듯이 나는 건강하여 내년 봄이 오면 쓰디쓴 대사물질을 만들 것이니 나에게 침범하지 말라. 나에게 월동해봤자 네 손해다. 다른 약골이나 찾아봐라”라는 경계신호다.

결국 휘황찬란한 가을 단풍빛깔은 나무가 곤충에게 보내는 경계신호로 나무와 곤충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함께 진화하여 적응한 공진화(共進化)다.

어찌 이 가을에 산천의 초목만 물들겠는가? 사람도 물들고, 사회도 물들고, 마음도 관계도 그리고 젊음도 늙음도 물들 것이다. 청춘의 이면을 보면 밝고 화려함 뒤에 치열한 고충이 도사리고 있다. 늙음의 뒤안에는 곱게 나이 듦의 건너에 인생의 회한과 아픔이 있다. 사회의 거리 앞 화려함과 풍성함 뒤에는 어두움과 치열한 경쟁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이다. 삶의 의지가 있다는 의미다. 인생을 단풍처럼 물들일 수 있는 의지가 있다는 것. 단풍빛깔이 나무의 의지표현이라면 우리 인생의 주름과 젊음의 격정은 바로 삶의 의지다. 경계에 대한 적응력, 주어진 경계에 대한 활동성, 이것이 바로 삶의 의지다.

가을철 단풍은 우리에게 인생이 곱게 그리고 찬란하게 물든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또 고통과 역경의 이겨냄이라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화려함 뒤의 치열한 적응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 박중빈 선생은 “서로 의지하고 바탕이 되는 동포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고 설파하신다. 여러 직종의 사람들 그리고 동물, 식물이 다 동포라는 것이다. 서로 경쟁하지만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의 존재다.

온 천지를 울긋불긋 물들이는 이 계절을 감상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나무와 곤충들이 치열한 삶을 사는 모습을 읽을 필요가 있다. 너도 참으로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만 다 좋을 수도 없고 너만 다 좋을 수도 없는, 서로 적응하며 공존할 수밖에 없는 치열한 역동성이 있다.

웃녁으로부터 내려오는 단풍친구를 맞이하려 산으로 산으로 가봅시다. 자연의 팔레트에 내 단풍도 한 점 찍어 넣고 단풍의 속풍경으로 들어가 봅시다.